1504년 무어인을 몰아내고 이베리아반도를 통일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그녀의 딸 후아나가 카스티야의 왕위를 계승한다. 후아나는 사랑과 권력에 버림받은 비련의 주인공이다. 결국 그녀는 신성 로마 제국 출신의 남편 펠리페에게 왕위를 빼앗긴다. 얼마 후 펠리페는 열병에 걸려 죽고, 아들 카를 5세가 스페인 국왕 자리를 이어받는다. 이렇게 해서 카를 5세는 운명적으로 광대한 제국의 황제가 된다.
비극적 삶을 살다 간 여왕 후아나
이사벨 여왕에서 그녀의 딸 후아나로 이어진 왕위 계승은 스페인이 유럽에서 지니는 위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사벨 여왕이 가톨릭 왕 페르난도와 결혼할 당시 그녀는 이미 카스티야, 레온,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안달루시아, 무르시아, 비스케이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 페르난도는 아르곤, 카탈루냐, 발렌시아, 마요르카, 사르데냐, 시칠리아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두 사람은 루시용, 그레나다, 나폴리, 나바라 그리고 이제 막 콜럼버스가 발견한 대서양 일대의 신대륙 등 풍요로운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후아나는 스페인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여인으로 수많은 예술 작품이 그녀를 노래했다. 그녀는 사랑 때문에 미쳤고, 미쳤다는 이유로 여왕의 자리를 박탈당했다. 후아나의 비극은 남편의 바람기에서 비롯되어, 아버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나중에는 아들에게도 의심받고 버림받는 것으로 이어진다.
후아나의 부모는 그녀를 부르고뉴 공작에게 시집보냈다. 부르고뉴 공작 펠리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이며 미남으로 유명하다. 후아나는 이 미남을 미치도록 사랑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둘, 딸 넷이 태어났다. 두 아들은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카를 5세(재위 1519~1556)와 페르디난트 1세(재위 1556~1564)이다. 4명의 딸은 모두 포르투갈, 헝가리, 덴마크의 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펠리페의 바람기로 인해 후아나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시녀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후아나는 1502년부터 간헐적으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504년 11월, 후아나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카스티야 여왕의 자리에 올랐고, 남편 펠리페는 친왕이 되었다. 후아나의 정신 이상 증세가 심해지자 펠리페는 그녀를 카스티야 여왕 자리에서 내쫓고는 자신이 왕권을 가로채려는 음모를 꾸민다. 후아나가 병이 깊어지면서 남편이 있는 네덜란드로 돌아가자 아버지인 페르난도가 섭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친왕 펠리페는 장인이 카스티야를 지배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다가 1506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아내의 영토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펠리페는 영국에서 헨리 7세와 조약을 체결해 영국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카스티야에서는 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고 장인이 물러나도록 압박했다. 이때 후아나는 병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펠리페는 혼자서 모든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06년 의욕적으로 통치 조직을 새로 정비하려던 펠리페는 열병에 걸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후아나는 남편의 시신을 토르데시야스의 고성으로 가져가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아나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아나는 1509년부터 아들 카를 5세가 죽기 3년 전인 1555년까지 거의 반세기 가까이 이 고성에 갇혀 지냈다. 따라서 후아나가 갇혀 지낸 고성은 스페인 사람들에겐 오랫동안 신비스러운 장소였다. 카를 5세는 갓난아이 때부터 폴란드에서 자랐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그 때문에 그가 스페인 국왕의 자리에 오르자, 대다수 스페인 국민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반감이 결국 반란으로 표출되었다. 일부 스페인 국민이 광녀 후아나의 이름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카를 5세는 곧 반란을 진압했다. 그러나 카를 5세는 이때부터 어머니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록 미치광이이기는 했지만 어떻든 법적으로 여전히 카스티야의 왕이었으며, 스페인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한 여왕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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