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국]#29_영국 내전 마무리, 찰스 1세 처형

by 티제이닷컴 2024. 7. 19.
728x90
반응형

찰스 1세가 처형되기까지

 1649년에 이르기까지 찰스 1세는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수년간 전란의 고통을 안겨주고 영국 내전을 초래한 주범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단지 나라가 정상을 회복하고 안정을 찾기를 바랐지만, 국왕이 체포된 이후 갈수록 과격한 방향으로 치닫는 것을 보고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1649년에 찰스 1세가 사형판결을 받는 순간에도, 그는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에게 여전히 존귀한 국왕이었다. 그해 찰스 1세의 처형일인 1월 30일 아침, 아주 특별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사형수가 된 찰스 1세는 감옥에서 화이트홀 궁전의 왕실 연회장으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부왕 때부터 찰스 시대까지 공사감독관을 지낸 이니고 존스가 왕실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설계한 건축물이었다. 또한 네덜란드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 천장화는 찰스 자신이 의뢰한 그림이며, 17세기 왕실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었다. 신성한 영국의 국왕이 의식을 거행했던 바로 그 연회장을 거쳐 찰스는 처형장으로 걸어갔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사람이 침묵에 잠긴 채 국왕을 에워쌌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어린 학생은 백발이 된 후에도 이 장면에 대해 생생히 회고했다. 그는 1649년 1월 30일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국왕이 걸어 나오자 사람들은 침묵했다. 병사들이 그를 둘러쌌고, 도끼를 내려치자 사람들도 고개를 떨어뜨렸다."

 프랑스 대혁명이 고조되던 시기에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진 순간, 프랑스 사람들은 혁명을 향한 열정으로 들떠있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인민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을 점령한 뒤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모습과는 달리 청교도 혁명에서는 국민들은 침묵했다. 찰스 1세의 처형은 결코 민중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지 못했다.


찰스 1세 처형 사건의 모순된 의의

 찰스 1세의 처형은 분명 이례적인 사건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국왕'이란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스리기 위해 내려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내려보낸 지배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이 때문에 당시 영국인들이 그토록 비통함에 잠겨있던 것일 수도 있다. 신권을 대리하는 국왕을 처형한 사건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의를 지닌다.

1. 군주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국왕이 순교자로 부각됨으로써 왕권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찰스 1세를 순교자로 숭배하는 일부 사람들이 존재한다.

2. 이 사건으로 인해 찰스 1세의 후대 왕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잘못하면 선왕처럼 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유명한 사회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국왕은 자기 목에 뼈가 하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부터 영국 국왕들은 행동하기에 앞서 1649년 1월 30일의 교훈을 되새겼다.

 찰스 1세의 처형 사건은 바로 이렇게 각기 다른 모순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크롬웰은 보수파? or 개혁파?

 크롬웰은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아주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자유주의자였다. 그래서 의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찰스 1세에 대항한 것이었다. 찰스 1세가 전쟁에 패배해 죽음을 맞이한 후 군주제와 귀족원이 붕괴하자 크롬웰은 새로운 급진 정부를 세워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그는 국왕이 되어 달라는 청원을 거절했는데, 이는 중세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동시에 크롬웰 자신도 자신이 정확히 어떤 곳에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1650년대에 크롬웰은 각기 다른 갈등 속에서 타협을 시도했다.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그는 개혁파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군주제의 신성함을 파괴한 처형 사건

 찰스 1세는 전쟁에서 패배한 후 국왕이 아닌 일개 신민으로 치부된다. 그가 유죄를 선고받아 사형에 처하는 모든 과정은 마치 일개 신민을 다루는 것처럼 행해졌다. 국왕을 심판하고 처형한 것 자체가 군주제의 신성함을 파괴해 버린 것이다. 찰스 1세는 국왕의 존엄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영국인이 보는 찰스 1세의 현재 위상

 찰스 1세는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을 만한 군주는 아니었다. 매년 그의 서거일이 되면 화이트홀에서 의식을 거행하고 미디어를 통해 방송해 주지만, 현대 영국인들은 찰스 1세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나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크룸웰
크롬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