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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57

[프랑스]#8 프랑스에 새로운 종교바람이 불다 프랑스, 종교계의 새 바람이 불다  프랑스에는 16세기 초부터 종교계 내부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는 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 당시 종교계를 주도하던 가톨릭교는 자신들의 종교 교의, 계급제도 및 각종 번잡한 종교의식 등이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 이미 시대에 도태된 개념이 되어 있었다. 시대는 신흥 자산계급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종교를 창설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프랑스 최초의 신교는 루터파였다. 1520년대에 프랑스에는 이미 많은 수의 루터파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 신교의 절대다수로 칼뱅파가 자리를 잡게 된다. 일찍이 신학을 공부한 장 칼뱅(1509~1564)은 1533년에 신교로 개종하고, 그다음 해에 프랑스 정부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피신한 후 그.. 2025. 4. 10.
[프랑스]#7 백년전쟁 마무리 및 영국의 장궁에 관해 백년전쟁 마무리 20세기 초, 로마 교회는 잔 다르크를 '성녀'로 추대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꽃다운 스무 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화형 당한 소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짧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삶을 살며 조국인 프랑스를 지키고 프랑스에 배신당한 잔 다르크는 자신의 목숨을 영원한 명예와 맞바꾸었다. 당시 판사는 그녀에게 국왕의 대관식에서 왜 전장의 깃발을 올렸는지 물었다. 잔 다르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공이 있는 사람이 그 영광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말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그녀의 영광이 바로 프랑스의 명예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에게 잔 다르크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이다. 잔 다르크의 가치에 대해서는 프랑스인보다 영.. 2025. 4. 8.
[프랑스]#5 백년전쟁, 프랑스의 구세주 잔 다르크의 등장 아쟁쿠르 전투, 프랑스의 패배 1415년,  오를레앙과 부르고뉴파의 세력 다툼으로 프랑스가 분열된 틈을 타서 영국 국왕인 헨리 5세는 6,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프랑스를 공격했다. 이들의 군사는 1,000명의 보병과 기병 5,000명의 장궁병으로 조직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군대는 3만 명을 넘는 규모긴 하였지만, 이 전투에서 다시 영국 장궁병들은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병사가 돌진할 때마다 영국 장궁병 한 명이 쏘는 화살은 다섯 발이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다섯 번만 쏘아도 5,000명의 장궁병이 쏜 화살은 2만 5,000발이 된다. 아쟁쿠르 전투(1415)에서 프랑스 병사들이 몇 번을 돌진했는지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가 없기 때문에 화살의 숫자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후세 .. 2025. 4. 6.
[영국]#61(마무리)_만국박람회, 대영제국의 절정을 보여주다 영국의 번성을 세계에 알려라, 만국박람회 1851년, 앨버트 공의 건의로 런던에서 제1회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그해 런던의 하이드파크에는 신기하게 생긴 건축물이 등장했다. 강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전통적인 건물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철골로 지지대를 만들고 천장과 벽면을 온통 큰 유리로 장식한 만국박람회의 대형 전시관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건물을 크리스털 궁이라고 불렀다. 이 획기적인 건축물은 현대의 유리온실 전시관의 표준이 되었다. 크리스털 궁은 강철과 유리 건축 설계로 유명한 조지프 팩스턴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신비로운 건물을 볼 수가 없다. 1936년 11월 30일 밤에 일어난 대화재로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현재에는 당시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서만 그 .. 2024.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