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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장2

[일본 근현대사]#40_일본의 청일전쟁 승리, 시모노세키 조약 [일본 근현대사]#39_청일전쟁 발발. 일본, 조선을 탐내다 구미 각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수정하기 위해 제1대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외상 이노우에 가오루가 무쓰 무네미쓰의 계책을 받아들여 도쿄에 로쿠메이칸(메이지 시대 외국인 접대소)을 건립하고 readmyworld.tistory.com 청은 이미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고, 일본도 열강의 간섭으로 이미 확보한 이익을 빼앗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청나라가 장인환과 사오여우롄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히로시마로 보냈다. 그러자 이토 히로부미는 그들이 전권을 위임받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로 그들을 돌려보내고 이홍장이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다 1895년 3월, 이홍장이 일본 시모노세키에 도착해 .. 2024. 1. 13.
[일본 근현대사]#37_일본, 국외 영토를 탐내기 시작하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진출해야 한다는 사상은 일본을 군국주의 침략 노선으로 인도했다. 그 후 일본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열강의 후발주자이자 아시아의 돌연변이로서 특유의 야만성과 흉포함으로 수많은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였으며, 수천만 아시아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일본의 피비린내 나는 흥성은 인류 역사에 치욕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는 그때 입은 상처가 오늘날까지도 모두 아물지 않아 여전히 일본을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지난 역사에 대해 애매하고 잘못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아시아 국가들과의 사이에 깊이 팬 심리적인 골이 메워지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탈아론 1885년, 일본 사상계의 아버지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자신이 운영.. 2024.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