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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2

[일본 근현대사]#47_난징 대학살과 태평양전쟁 발발 1937년, 표면적으로는 중·일 관계가 매우 평온한 것처럼 보였지만, 4월부터 일본군이 핑진(현재 베이징과 톈진) 근교에서 군사훈련을 시작하였으며, 6월에는 펑타이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내부에서 군대의 이동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난징 대학살, 일본 군국주의의 광기 일본 도쿄 정치계의 소식통 사이에서는 칠석날 밤에 화베이에서 9.18 만주사변과 같은 사건이 재연될 것이라는 풍문이 떠돌았다. 같은 해 7월 초, 일본 천황 히로히토와 육군대신 스기야마 하지메가 중일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천황이 소련 군대가 걱정이라고 말하자, 스기야마 하지메는 "중국과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2~3개월이면 해결될 것입니다."라고 호언장담했다.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 부근에서 일본군과 중국군이 충돌한 .. 2024. 1. 22.
[일본 근현대사]#41_중국의 의화단 운동과 러일전쟁의 조짐 [일본 근현대사]#40_일본의 청일전쟁 승리, 시모노세키 조약 [일본 근현대사]#39_청일전쟁 발발. 일본, 조선을 탐내다 구미 각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수정하기 위해 제1대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외상 이노우에 가오루가 무쓰 무네미쓰의 계책을 받아들여 도 readmyworld.tistory.com 일본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3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중국에 돌려주자, 더욱 특이한 병태적 심리에 빠져 군국주의의 바람이 점점 드세졌다. 이른바 '와신상담'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전 국민에게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전후 처리에 주력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일본은 러시아와 중국, 조선에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중국의 의화단 운동과 일본 시모노세키 조약은 일본 입장에.. 2024.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