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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2

[일본 근현대사]#37_일본, 국외 영토를 탐내기 시작하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진출해야 한다는 사상은 일본을 군국주의 침략 노선으로 인도했다. 그 후 일본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열강의 후발주자이자 아시아의 돌연변이로서 특유의 야만성과 흉포함으로 수많은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였으며, 수천만 아시아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일본의 피비린내 나는 흥성은 인류 역사에 치욕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는 그때 입은 상처가 오늘날까지도 모두 아물지 않아 여전히 일본을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지난 역사에 대해 애매하고 잘못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아시아 국가들과의 사이에 깊이 팬 심리적인 골이 메워지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탈아론 1885년, 일본 사상계의 아버지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자신이 운영.. 2024. 1. 11.
[일본 근현대사]#25_메이지 유신, 계몽의 서막 메이지 6년(1873년), 역사적으로 유명한 계몽 학술 단체인 '명육사'가 탄생했다. 그해 7일, 미국 주재 일본 공사 모리 아리노리가 귀국한 후 문학계 및 교육계 유명 인사들을 주축으로 학술 단체를 조직하고 문명개화 정책을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메이지유신 계몽운동 니시무라 시게키의 노력으로, 츠다 마미치와 니시 아마네, 나카무라 마사나오, 가토 히로유키, 미쓰쿠리 린쇼, 미쓰쿠리 슈헤이, 스기 고지,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 제일의 서양학자들이 학술 단체 조직에 대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9월, 비로소 명육사가 설립되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대표로 추대되었지만 그가 고사하여 스기 고지가 초대 대표가 되었다. 이듬해 3월, '명육잡지'가 발간되었다. 니시무라 시게키는 창간호의 창간 취지문에서 "일본의 .. 2024.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