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프랑스1 [프랑스]#4 흑사병과 그 이후 분열되어 가는 프랑스 자크리의 난 이후 분열되는 프랑스 자크리의 난보다 더 큰 문제는 국왕이 귀족들의 포로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었다. 이는 귀족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했다. 한때 타격을 받았던 귀족들의 세력은 다시 살아났고, 서로 힘을 합침으로써 그 세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로써 천신만고 끝에 하나가 되었던 프랑스는 다시 사분오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큰 위기에 봉착한 샤를 5세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세수를 정리하고 포병을 조직했을 뿐 아니라 군사지도자 게클랭을 프랑스군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영국을 공격했다. 이때 흑세자 에드워드는 병세가 심각하여 전쟁에 참여할 수 없었다. 반면, 게클랭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1370년대에 영국이 프랑스에 몇 곳의 항구를 건설한 것에 자극받아 프랑스는 국가 부흥.. 2024. 12.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