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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6

[러시아사]#57_소련, 제2차 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11월 7일은 소련의 10월 혁명 기념일이다. 하지만 1941년 11월 7일은 예전과 달랐다. 독일군이 이미 모스크바로 진격해 오는 상황이었기에 소련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신세였다. 그날 오후, 천지는 눈으로 뒤덮였고 날씨는 평소보다 더 추웠다. 하지만 시민들은 소리 높여 군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으며 붉은 광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밤 9시, 레닌의 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스탈린이 연설을 시작했다. "전 세계가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침략자 독일의 억압 속에서 유럽인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위대한 해방의 사명은 이제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절대 이 숭고한 사명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미하일 쿠투조프의 용기가 우리를 일어서게 할 것.. 2024. 3. 8.
[일본 근현대사]#51_종전 후 미국의 일본 경제, 교육, 헌법에 대한 개입 신헌법에 의해 의회와 내각 그리고 지방 자치 제도에 대한 개혁도 기본적으로 이루어졌다. 재벌들은 해산하라, 미국의 경제 개입 경제 분야에서는 일본 군국주의를 지탱하던 주요 기반으로서 기생하던 지주 토지 소유제를 개혁해 경작자가 토지를 소유하는 자경농 제도로 변모했다. 연합군 총사령부는 일본 군국주의의 대외 확장에 경제적 기반을 제공했던 재벌을 해산시켰다. 당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야쓰다 등 10대 재벌이 소유한 기업의 총자산은 전체 기업 총자산의 35퍼센트, 금융자산의 53퍼센트, 중화학 공업의 49퍼센트를 차지했는데, 미국은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일본에서 재벌이 계속 존재한다면 이 나라는 곧 재벌의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은 지주 회사를 해산시키고, 재벌 가족의 통치권을 취소한다... 2024. 1. 24.
[일본 근현대사]#50_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전후처리 1945년 8월 30일,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에 도착했다. 그는 향후 5년간 일본에서 '태상황'의 지위를 누린다. 미국의 일본 점령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항복 조인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네덜란드 등 각국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과 우메즈 요시지로 참모총장이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맥아더는 황궁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도쿄의 중심 다이이치 생명 빌딩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9월 27일, 일본 히로히토 천황이 맥아더를 방문했다. 천황이 미국 대사관에 도착했을 때, 미국 사진기자가 히로히토와 맥아더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을 사진 찍었다. 이 사진이 일본 신문에 실린 후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본 .. 2024. 1. 23.
[일본 근현대사]#49_두 개의 원자폭탄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 1943년부터 일본은 일본 본도에서 쿠릴 열도, 오가사와라 제도, 이오지마, 마리아나 군도, 필리핀 군도,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및 인도양의 안다만 제도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방어선의 바깥쪽에는 라바울, 솔로몬 섬 중부, 뉴기니섬 중부와 마셜 제도가 있었다. 미국의 진격, 밀리는 일본 일본은 중국군과 관동군, 조선군을 신속하게 태평양으로 파견했지만, 미국의 빠른 공격과 압도적인 자원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12월 말, 일본 해군은 솔로몬 군도에서 철수하였으며, 뉴기니에 있던 13만 일본군이 고립되었다. 일본은 마리아나 군도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1944년 6월, 미군의 대형 함대가 사이판으로 접근해 마리아나 군도에 있는 주요 일본 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일본은 항공모함 9척과 .. 2024.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