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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일본61

[일본 근현대사]#번외_'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70세가 되도록 수많은 사업을 경영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었으며, 자본주의의 기본인 이윤 추구를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더라도 도덕과 윤리 규범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도 행동해야 하며,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 역시 옳은 행동이 아니라며 날 선 비판을 하였다. 당시까지도 일본에 널리 퍼져있던 유교적 사고관은 장사를 굉장히 불결한 것으로 간주했으며, 장사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70세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의 널리 알리기 위해 '논어와 주판'이라는 저서를 저술하였고, 본인의 주장을 담은 오디오 레코드를 제작해 사회적으로 홍보하였다.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살던 시대.. 2024. 1. 2.
[일본 근현대사]#23_메이지 유신 1890년대, 산업의 비약적 발전 일본 초기 산업화 단계 시기에 일본의 식산흥업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기존의 관영 기업들을 대부분 민간 부문에 매각해 민간 자본주의 발전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정부 관영기업 설립은 기업이 실리를 거두는 것을 보여주어 민간 부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였다. 따라서 정부는 선진 기술을 도입해 기술자를 양성한 후 이 기업들을 민간 부문에 매각했다. 메이지유신 1890년대, 산업의 발전 그러나 이들 기업은 관영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관리층의 임금이 너무 높고, 기업의 지출이 과도하다는 둥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해 있었다. 1880년대 초에는 철도, 광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해마다 적자에 시달렸다. 1880년 일본 정부가 관영기업들을 매각한 것은 국가의 기업 설립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2024. 1. 1.
[일본 근현대사]#22_메이지 유신 초기, 면직물과 통신 분야 생사(삶아서 익히지 않은 명주실)는 일본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오랫동안 총수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었다. 당시 들여올 게 많았던 일본은 외국과의 무역에서 만성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생사가 외화 수입을 벌어다 주는 몇 안 되는 품목이었다. 메이지 유신 초기, 면직물 산업 그러나 메이지 초기에 기술이 낙후되고 런던에서 막대한 양의 일본 생사가 조악한 품질로 인해 폐기되는 사건이 일어난 후, 일본 생사의 명성은 급격히 하락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프랑스인들을 초빙해 관영 생사 공장을 건설하고 프랑스로부터 기계와 증기선을 도입했다. 이 공장이 건설되자 정부는 전국에 있는 사족의 아내와 딸들에게 모두 이 공장으로 와서 기술을 배우도록 하여 신기술을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데 힘썼다... 2024. 1. 1.
[일본 근현대사]#21_메이지 유신, 식산흥업 정책을 실시하다 1872년, 도쿄에서 요코하마에 이르는 일본 최초의 철도가 개통했다. 많은 일본인이 개통기념식을 구경하기 위해 도쿄 신바시에 몰려왔다. 1874년에는 오사카-고베 철도가 건설되었고, 1877년에는 교토-오사카 철도가 개통되었다. 도쿄-요코하마 철도는 정부가 런던에서 100만 파운드의 공채를 발행해 건설한 것이었다. 일본 철도 산업의 발전 메이지 초기에 철도 건설을 지휘했던 이노우에 마사루는 훗날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메이지 초기에는 서양식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 없었다. 철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 측량과 설계, 시공 및 기차 운전은 모두 외국인이 담당했다. 기수라고 불리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이 외국 기술자를 따라다니며 일본인 노동자들과의 통역을 도맡아 했다. 당시 일본인 노동자들은.. 2023.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