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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

[러시아사]#4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두 번째 이야기

by 티제이닷컴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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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 [러시아사]#3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3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의 유명한 표트르 1세(재위 1682~1725)가 즉위하기 전, 러시아는 이미 영토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였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차단한 폐쇄 국가였다. 시기로 따지면 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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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트르 1세 즉위 직전의 러시아는 매우 낙후된 수준이었다. 수공업 공장은 몇십 개에 불과하였고, 농노제라는 특성상 농업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러시아 국민의 95%가 농노들이었는데 , 이들은 매우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하루 한 끼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 절반이 넘는 아이들은 한 살 전에 생을 마감하였고, 40세까지 산 사람들은 엄청난 행운으로 여겨졌다.

 문화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귀족들조차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이가 거의 없었으니, 평민은 말할 가치도 없었다. 당시 수도였던 모스크바에서도 글을 아는 사람이 100명 중 3명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의 건축물들은 거의 나무로 지어졌으며, 도로 또한 오랫동안 보수 작업이 없었기에 날이 건조하면 흙먼지가 날렸고, 비가 오면 진흙이 되어 걸어 다닐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러시아인은 다른 나라도 러시아에 있는 본인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오늘날 유행하는 표현으로 소위 '가스라이팅'을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한 러시아라는 국가에 의해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러시아가 아닌 다른 나라를 상상하는 것은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그저 사악한 꿈을 꾸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후대의 사람들은 당시 러시아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 사회와 생활 방식을 표현하자면, 힘은 있지만 한없이 나약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너무나도 곤궁한, 총명함은 있지만 사상은 없는, 기개를 품었지만 우둔한 모습이었다. 일반인들의 생활은 물론 소송이나 재판 같은 국가 법 집행에서도 러시아는 항상 인간의 존엄을 짓밟았다. 심지어 기독교를 수호하고 있는 순간에도 말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러시아와 비교 불가능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서유럽과는 달리 러시아의 모습은 정확히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17세기 말, 드디어 러시아에 큰 뜻을 품은 황제가 등장하였나니, 우리는 그를 '표트르 대제'라고 칭한다. 그는 황제의 절대 권력을 이용해 서양 국가를 배움으로써 러시아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제시하며, 강국으로 향하는 길을 닦아 놓았다. 하지만 그전에 권력 투쟁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다른 국가와 다를 바 없이, 러시아 제정의 황좌도 반드시 피의 대가를 감당해야 차지할 수 있는 권력이었던 것이다.

 개인적 의견으로 이런 순간에 표트르 대제의 출현은 정말 운명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최악의 상황에 나온 최고의 권력자. 이 두 궁합이 만날 수 있다니 말이다. 늘 역사에 If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표트르 대제가 없었다면 과연 러시아는 어떤 모습이었을 지에 대한 상상을 해볼 수밖에 없다. 과연 다른 유럽 국가들과 대등한 자리에서 세계 대전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소련이란 체제도 등장했었을까? 우리가 겪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가정을 해보는 건 도파민을 상당히 들끓게 한다.

외국식 의복을 입은 표트르 1세
외국식 전통복 차림의 표트르. 출처 : 위키백과

 

[역사학] - [러시아사]#5_표트르의 유럽유학

 

[러시아사]#5_표트르 1세의 유럽유학

17세기 러시아는 위기 상황이었다. 기존에 있던 구시대적 발전 모델들이 이미 힘을 잃은 상태여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1697년 표트르가 유럽으로 1년간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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