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정부에 대한 치솟는 불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에는 유명한 배 한 척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와 함께한 이 순양함의 이름은 '오로라'였다. 이 배의 대포는 1917년부터 줄곧 겨울궁전을 조준하고 있다. 1917년 11월 7일, 순양함 오로라가 내뱉은 굉음과 함께 러시아의 역사는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됐다.
하지만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1917년 2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4년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인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들과 군인들에 의해 발발한 2월혁명으로 인해 300년이나 러시아를 통치했던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한 이후 러시아에는 두 개의 정부가 출현해 혼란을 빚고 있었다. 하나는 자산 계급이 세운 임시 정부였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와 군인들이 세운 소비에트였다. 이에 당시 실권을 가지고 있었던 소비에트는 사회주의자인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면 스스로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 생각해 자신들의 권력을 임시 정부에 넘겨주고 이인자의 자리를 택했다.
하지만 자산 계급의 임시 정부는 러시아인들을 실망하게 하기 일쑤였다. 끊임없이 개혁에 관한 법률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실천한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넌더리가 났던 국민들이 원하는 건 평화와 빵과 땅이었다. 하지만 임시 정부는 차르 정권보다 더 강력하게 전쟁을 주장했으며 국민들의 삶과 자국 개혁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임시 정부와 러시아 국민들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고, 둘 사이의 골은 더 깊어져만 갔다.
19세기 러시아 역사학자인 솔로비요프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국민들은 벌써 잠에서 깨어 길을 떠날 준비를 끝냈다. 그들은 지금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렇다. 바로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
1917년 4월 16일 저녁, 수천 명의 노동자와 군인들은 페트로그라드에 모여 지도자 레닌의 귀환을 기다렸다. 레닌이 외국에서 도착하자 여기저기에서 쏘아져 나오는 불빛들이 그를 환하게 비추었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만세!" 러시아로 돌아온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말이다. 다음날 '4월 테제'를 발표한 그는 임시 정부에서 벌이려는 전쟁은 제국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전쟁 중지를 촉구하는 한편 전권을 소비에트에 이양할 것을 요구했다.
레닌의 요구를 두고 소비에트 사이에서도 이론이 분분했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의 대표들은 그렇게 빨리 다음 혁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임시 정부의 집정을 허락하면서 소비에트가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당시 볼셰비키는 규모가 매우 작았다. 당원들 수 역시 적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영향력 또한 미미한 수준이었다. 지지자들 역시 대부분 노동자이어서 레닌이 주장하는 정권 이양은 소비에트 내부, 특히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대표들의 눈에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4월 테제
1917년 4월, 망명지였던 스위스에서 귀국한 레닌이 발표한 혁명 전술이다. 2월혁명 후 혼란스러운 정세를 분석하고 혁명을 예견하며 볼셰비키 당의 기본적인 전술을 나타낸 강령이다. 러시아 혁명의 성격, 임시 정부에 대한 태도, 계몽 활동, 소비에트 공화국 건설, 토지 국유화, 당의 임무, 국제적 사회주의 조직인 인터내셔널의 부활, 생산과 분배의 관리 등 10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1917년 6월 16일에 열린 제1차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 대표대회에서는 임시 정부 문제가 의제로 다루어졌다. 대회에서 멘셰비키 대표 체레텔리는 국가의 운명을 위해 책임을 떠안고 싶어 하는 정당은 없을 것이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에서 '정권을 내게 넘기고 떠나시오. 당신들이 하던 일을 이제 우리에게 맡기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비장한 목소리로 "있습니다! 우리 당은 언제든 정권을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조롱과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대부분 체리텔리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결국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임시 정부를 계속 지지한다는 것으로 결론짓고 대회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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