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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포르투갈&스페인

[스페인] 레판토 해전, 가톨릭vs이슬람 지중해 패권다툼

by 티제이닷컴 202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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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vs 오스만 제국,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라

 펠리페 2세의 앞길에 불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카를 5세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전쟁을 치른 탓에 거의 모든 유럽 국가가 재정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유럽은 잠시 휴전 상태에 들어가고 스페인도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또한 스페인의 지중해 맞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술레이만의 아들들이 왕위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은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1560년대 초 오스만 튀르크 해군은 대규모 해전을 치르지 않았다. 1564년 펠리페 2세는 도리아를 해군 제독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서유럽의 모든 가톨릭 국가가 오스만 튀르크와 싸울 스페인 해군을 지원했다. 1560년대 중반 스페인 해군은 무적함대라는 명성에 손색이 없었으며 스페인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가져다주었다.

  1571년, 펠리페 2세는 교황 비오 5세와 동맹을 맺고 강력한 함대를 구성했다. 함대의 총지휘는 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인 돈 후안이 맡았다. 이즈음 오스만 튀르크의 함대는 이미 출항해 지중해에서 수개월간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는 소규모 전투로 매우 피로하고 식량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9월 16일 돈 후안의 함대가 코린트만으로 출발했다. 곧이어 돈 후안은 오스만 튀르크의 함대가 그리스 레판토 해안 근처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이 정보는 오스만 튀르크의 해군 병력을 과소평가했다. 어떻든 이 정보에 크게 고무된 돈 후안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펠리페 2세에게 전권을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작자미상의 레판토 해전(1571)


레판토 해전

 10월 7일, 서로 상대를 찾아다니던 두 함대는 레판토만 입구에서 마주쳤다. 돈 후안은 신속히 함대를 움직여 적들을 해안과 육지 사이로 몰아넣었다. 돈 후안의 전술은 이 해전의 승리를 이끄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가톨릭 함대와 이슬람 함대는 이곳에서 드디어 상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스만 튀르크 함대가 230여 척, 가톨릭 함대가 208척이었으니 양쪽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해전에서 아주 강력한 대포를 장착한 넓은 선폭의 베네치안 갈레아스 6척은 돈 후안이 이끄는 가톨릭 함대의 승리를 이끈 견인차였다. 갈레아스 함대는 최전방에서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강력한 화력을 내뿜었고, 상대편 배들을 산산조각 냈다. 반면 오스만 튀르크 함대의 갤리선에 타고 있는 병사들은 활을 들고 힘겹게 저항했다. 확실히 돈 후안 함대의 대포와 소총의 화력이 오스만 튀르크를 앞섰다.

 가톨릭 함대는 오스만 튀르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온전히 돌아간 오스만 튀르크 배는 30여 척에 불과했고, 나머지 전함은 포획되거나 산산조각 나거나 바다 깊이 가라앉았다. 오스만 튀르크 병사 3만 이상이 죽고 3,0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러나 가톨릭 함대는 전함 16척, 병사 8,000명을 잃었고, 2만 1,000명이 다쳤다. 이들 부상자 중에는 돈키호테를 쓴 대문호 세르반테스가 있었다. 그는 전투에서 가슴과 왼쪽 팔에 상처를 입었다.

 돈 후안은 오스만 튀르크 군대를 더 격추하려 했으나, 다르다넬스 해협에 이른 것으로 적들을 봉쇄할 수 있고, 적들에게 충분히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펠리페 2세는 돈 후안 함대에 지중해에서 조금 더 대기하도록 명령했다. 물론, 펠리페 2세는 카를 5세처럼 전쟁광은 아니었으며 십자군 환상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스페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판단했다. 또한 주변 고위 관료들에게 자문하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서유럽의 맞수들이 그가 동방의 공공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잠시 휴전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레판토 해전으로 오스만 튀르크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오스만 튀르크는 곧이어 튀니지에서 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당시 불패 신화를 이어오던 오스만 튀르크의 강력한 위세를 꺾고 가톨릭 함대가 인간 중심의 전쟁에서 탈피했다는 점에서 레판토 해전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한 단계 발전된 기술로 강력한 갤리선을 선보였고, 이후 해양 약탈이 난무하는 해적 시대를 열었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술레이만 대제의 죽음과 동시에 전성기의 화려한 막을 내렸다. 오스만 튀르크 함대는 이후 지중해에서 몇 차례 작은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몇십 년간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며 내부적으로 부패가 심해져 결국 그 빛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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