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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포르투갈&스페인

[스페인] 피사로와 잉카 제국 첫 번째 이야기 - 잉카 발견

by 티제이닷컴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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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의 멸망

 아스텍 왕국이 멸망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카를 5세는 그 소식을 코르테스로부터 직접 보고받았다. 이후 원대한 식민지 개척의 꿈을 가진 피사로가 카를 5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카를 5세 앞에서 자신의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피사로는 1511년 발보아 원정대의 일원으로 아메리카를 탐험하면서 발보아와 함께 파나마 해협과 태평양을 발견했다. 1526년 피사로는 2명의 동료와 탐험을 떠났다. 이들은 적도를 지나 툼베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메리카의 또 다른 대제국, 바로 잉카 제국의 영토였다. 영토는 안데스산맥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그 길이가 3,500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잉카 제국은 지금의 페루 쿠스코를 수도로 삼고 있었다. 피사로 일행은 툼베스 성에서 귀빈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성안에 신전을 둘러보고 잉카 제국이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지만 아스텍인처럼 살아 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피사로의 눈을 번뜩이게 한 것은 바로 신전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황금이었다.

 젊은 카를 5세가 막 코르테스의 영토 확장 소식을 듣고 고무되어 있을 때, 또 하나의 엄청난 정복 계획이 그의 앞에 놓였다. 그는 끓어오르는 열정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그는 피사로를 새로운 식민지의 총독이자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으며, 그의 동료 알마그로를 툼베스 방어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카를 5세는 아직 정복하지도 않은 영토를 '신 카스티야'라 명명하고 두 사람에게 하사했다.

 잉카 제국은 내란에 휩싸여 있었다. 전 국왕 와이나 카파크가 죽은 후, 그의 두 아들 아타우알파와 우아스카르가 서로 왕위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내전을 펼치고 있었다. 양측은 각기 자신의 근거지에서 추종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잉카 제국 남부에서 아타우알파의 군대가 우아스카르를 붙잡았으나 동시에 또 다른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아타우알파는 잉카 제국 북부 카하마르카라 성에 병사를 주둔시켰다. 피사로는 자신을 따르는 180명의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다시 툼베스 성을 찾았다. 그러나 이 성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내란의 영향만 아니라 1525년 이후 천연두가 잉카 제국을 휩쓸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것이다.

 피사로는 툼베스강 남쪽 상미겔에 최초 정착지를 세웠다. 이어서 증원 부대가 도착했다. 피사로는 먼저 정탐원을 보내 국왕 아타우알파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도록 했다. 피사로의 정탐원은 도중에 우연히 국왕의 특사를 만났고 국왕이 피사로를 자신의 진영으로 초대한다는 말을 전했다. 피사로는 168명의 병사를 이끌고 국왕의 특사를 따라 험준한 안데스산맥을 올랐다. 1532년 11월 15일 피사로는 험준한 계곡 사이에 위치한 카하마르카에 도착했다. 국왕은 자신의 군대를 성 밖에 머물게 하고 그 자신은 무방비 상태로 성안에서 피사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사로의 사신이 아타우알파의 침실로 찾아가자 그는 내일 피사로를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아타우알파가 제 발로 찾아오겠다는 말이 전해지자 피사로 일행 사이에서는 한참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피사로는 코르테스를 모방해 수많은 적군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국왕을 사로잡기로 했다.

 다음날 국왕은 피사로를 한참이나 기다리게 했다. 그러고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6,000명 호위병 행렬을 이끌고 성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아타우알파는 화려한 수레 위에 앉아 있었다. 피사로를 따라온 신부가 국왕에게 기독교 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국왕이 이를 거부하자 피사로는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스페인 군대의 대포 소리와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군대가 사방에서 국왕을 에워싸고 그를 사로잡았다. 국왕의 호위병들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병사들 2,000명 이상이 광장에 쓰러진 후였다. 성 밖에서도 수많은 잉카 제국 병사가 스페인 병사들 손에 처참히 살해되었다.

 피사로는 사로잡은 국왕을 교묘히 이용하기로 했다. 잉카 병사들은 국왕이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했다. 아타우알파는 피사로에게 금과 은을 줄 테니 자신을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피사로에게 카하마르카 성에 있는 큰 방을 황금으로 채우고 또 다른 방을 그보다 2배 많은 은으로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이 방들은 가로 7미터, 세로 5미터가 넘는 큰 방이었다. 이에 피사로는 직접 2미터 높이에 선을 긋고 2달 안에 그 선까지 금과 은을 채우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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