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학/영국

[영국]#3_1066년, 영국 역사의 변곡점 '왕위쟁탈전'

by 티제이닷컴 2024. 6. 14.
728x90
반응형

1066년, 영국의 왕위쟁탈전

 기원후 1000년이 지나면서 잉글랜드는 통일을 이루고 덴마크의 지배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할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11세기 전반기에 잉글랜드의 왕위는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막강한 세력을 가진 귀족들은 기회만 되면 왕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각축을 벌였다. 독실한 그리스도교였던 참회왕 에드워드(1003?~1066)는 이런 정치판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애착보다 경건한 신앙심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세속 왕국보다는 하나님의 왕국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1066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임종 때 웨식스 백작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도 하고, 그 훨씬 전에는 자신의 먼 친척인 노르망디 공 윌리엄에게 왕위를 약속했다고도 한다. 바로 이 '일설'로 인해 윌리엄은 브리튼을 침략할 구실을 얻게 된다.

 실제로 에드워드가 해럴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그해 이 웨식스 백작은 해럴드 2세(1020?~1066)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족이 아닌 해럴드가 국왕이 되자 귀족들 사이에서 불만이 팽배했다. 그들은 해럴드가 왕위에 오른 뒤 하늘에 긴 꼬리를 늘어뜨린 혜성이 나타난 것을 두고, 곧 왕권이 전복될 징조로 보았다.

 1066년 초, 유럽 대륙의 귀족들에게 '서자 윌리엄'으로 무시당하던 노르망디 공은 브리튼을 침공할 계략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는 해럴드가 아닌 자신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노르망디 공은 상륙작전을 수행할 전술이나 경험, 하물며 함대도 없었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그가 가진 것이라곤 노르망디에 있는 오합지졸식 군대가 전부였다. 이에 따라 그의 브리튼 정복 계획은 일개 모험가의 허황한 꿈처럼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 그의 적수인 해럴드 2세는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군사 전문가였으며, 잉글랜드 역시 그리 만만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이윽고 윌리엄 대공이 유럽 대륙에서 떨친 명성에 기대어 이번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브리튼 정복이라는 이 군사적 모험에서 큰 횡재를 얻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전함과 말, 군사를 이끌고 노르망디로 속속 집결했다. 이렇게 윌리엄 대공의 깃발 아래 전 유럽의 용병들이 모여들었고, 그의 고민도 착착 해결되어 갔다.

 이제 모든 출정 준비는 끝이 났다. 침략자들의 함대가 닻을 올리고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강한 서남풍이 불어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불행하게도, 근 6주 동안 바람은 고요하고 물결도 잔잔했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오합지졸들은 서로를 원망하며 다투기 시작했다. 재물과 탐욕에 눈이 먼 그들의 불만을 해소하게 해 줄 방도는 달리 없어 보였다.


윌리엄, 영국으로

 지루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하늘이 이들에게 운명의 서남풍을 하사했다. 그리고 거대한 침략군의 함대가 바람과 함께 출항함으로써 윌리엄 대공의 정복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윌리엄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윌리엄 대공의 군대가 발이 묶여 있던 40여 일 동안 오히려 전세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번 왕위쟁탈전에 또 다른 경쟁자로 뛰어든 노르웨이 국왕 하랄 3세(1015~1066)가 윌리엄의 군대가 항구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잉글랜드를 먼저 침략했다. 이에 해럴드 2세는 윌리엄을 막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군대를 북쪽으로 급파할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군은 요크 북부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노르웨이 침략자들을 단숨에 격파하고, 잉글랜드의 왕위를 갈망하던 하랄 3세를 살해했다. 타국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은 하랄의 시신은 마치 또 다른 침략자인 윌리엄 대공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노르망디에서 온 침입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노르웨이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해럴드 2세의 군대는 사상자도 많고 전투력이 약해져 있었으므로 계속되는 침략을 막을 만한 여력이 없었다. 노르웨이군을 물리친 지 5일 만에 해럴드 2세는 윌리엄이 잉글랜드 남부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피폐해진 군사들을 수습해서 노르망디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서둘러 남하했다.

빅벤
영국 런던의 빅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