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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영국

[영국]#38_구교냐 신교냐, 제임스 2세냐 윌리엄 3세냐

by 티제이닷컴 202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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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총독, 윌리엄의 영국행

 영국의 의회가 네덜란드의 총독 부부를 국왕으로 초청한 것은 어찌 보면 모험이었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영국의 군대가 다시 국왕에게 충성을 바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빌럼(윌리엄)의 군대를 가로막을 가능성도 있었다. 당시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서로 등을 돌리던 상황이었다. 이 계획이 실패한다면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어찌 되었든 새로운 국왕을 불러오기 위한 준비는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이제 민심을 얻기 위해 여론을 모아야 했다.

 1688년 10월 초순에 영국 각 도시의 번화가, 심지어는 궁벽한 농촌 지역에까지 대량의 선전물과 전단, 벽보가 나돌았다. 국왕의 전제정치를 비판하며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또 의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순간에 온 나라가 들끓기 시작했다.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조짐이었다.

 초청장을 받았을 때 윌리엄 총독은 뜻밖의 내용에 아주 기뻐했다. 당시 그는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에 영국의 지원이 절실했다. 사실, 그는 아내인 메리가 영국의 왕위를 물려받기를 고대하고 있다가 제임스 2세가 왕자를 얻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크게 낙담한 상태였다. 윌리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구나. 이제 희망이 없어졌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회의 초청장은 그에게 영국을 합법적으로 접수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 것이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영국 의회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해 10월 11일, 윌리엄은 엄숙하게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서 그는 영국 국민들의 고통스러운 처지에 진심으로 '동정'의 뜻을 표하며, 메리의 합법적인 남편으로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가 영국의 '신교와 자유, 그리고 재산 및 자유로운 의회'를 수호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군사를 이끌고 네덜란드에서 출발했다.

 1688년 10월 20일, 윌리엄은 1만 5,000명의 다국적 부대를 500척의 전함에 나누어 태우고 영국을 출항했다. 하지만 600여 년 전 윌리엄 1세의 '노르만 정복'때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바람 때문에 항구로 돌아와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도 기다린 지 10일 만에 다시 뱃길이 열렸다. 11월 1일, 윌리엄의 함대는 순풍을 타고 도버 해협으로 진입했다. 이들을 저지해야 할 영국 함대는 역풍에 가로막혀 발이 묶였다.

 윌리엄의 함대는 어떤 저항도 받지 않으며, 여유롭게 잉글랜드 남서부에 상륙했다. 바람까지도 힘을 빌려주었다는 이 이야기는 잉글랜드 신교도들이 강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하였다. 사람들은 하늘이 윌리엄을 도와주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제임스 2세 vs 윌리엄 총독

 윌리엄의 군대가 잉글랜드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제임스 2세를 경악하게 했다. 그는 급히 군대를 소집했지만 규모나 전력 면에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2세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건 그의 군대가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제임스의 군대는 윌리엄의 군대가 상륙한 후부터 마치 이 원정대의 훈련 상대인 양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양측 군대는 서로 대치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실제로는 사상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이윽고 총사령관 존 처칠이 지휘하는 잉글랜드 주력군이 모두 격파되고, 제임스가 심혈을 기울여 재건했던 해군마저 그를 두고 도망쳐 버렸다.

 이런 희극적인 상황이 연출된 이유는 바로 제임스 군대의 절대다수가 신교도였기 때문이다. 소수의 가톨릭교도를 제외하고는 제임스 2세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윌리엄의 군대로 속속 투항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군대에 버림받은 제임스 2세는 딸 메리와 앤에게조차 외면당한다. 그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윌리엄에게로 돌아서자 가련한 제임스 2세는 더 이상 싸울 기력조차 상실했다. 그에게는 이제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국왕은 절망 속에서 잉글랜드 국민에게 마지막 고별 연설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짐이 떠난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있겠는가? 짐의 딸도, 그리고 짐의 군대도 짐을 배반했다. 이 군대는 짐이 맨손으로 일으켜 세우다시피 한 것이다. 짐은 그들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풀었다. 이런 자들조차 짐을 배반했는데,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자들에게 도대체 어떤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이 희극의 1막은 제임스 2세가 도피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윌리엄은 제임스가 안전하게 런던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진격해 왔다. 국왕은 간발의 차이로 런던을 떠났고 사위와 장인은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비껴갔다. 그 상황은 마치 치밀하게 구성된 연극 대본처럼 절묘하기까지 했다.

윌리엄 3세
네덜란드에서 건너와 영국 왕이 된 윌리엄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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