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영국6 [영국]#24_찰스 1세와 의회의 대립 찰스 1세, 왕위에 오르다 1625년, 찰스 1세는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젊은 국왕은 부왕의 명석함보다는 오히려 '왕권신수설'을 제창했던 부왕의 고집을 물려받았다. 그는 약간의 말더듬이에다가 매사 우유부단했지만, 왕권신수설을 통치방침으로 삼으면서 독단적인 군왕이 되었다. 찰스 1세가 '국왕의 권력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정치에 반영하면서부터 그와 잉글랜드는 일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혼란은 찰스 1세가 처형된 후에도 몇십 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이 시기의 영국은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으며, 이 나라가 역사의 파도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지는 국왕의 능력과 지도력에 달려 있었다. 결국 이 범선의 선장인 찰스 국왕이 국가의 운명을 .. 2024. 7. 9. [영국]#17_혼담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정치가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 혼담도 하나의 전략 엘리자베스 1세가 평생 독신으로 지낸 데에는 앞선 여러 소문도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그녀에게 결혼은 가장 큰 이득을 얻어낼 수 있는 일종의 수단인 셈이었다. 즉위 후 20여 년 동안 엘리자베스에게는 수많은 구혼자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혼을 국익을 위한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볼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미혼이라는 조건을 이용해 유럽 각국의 쟁쟁한 구혼자들을 경쟁시킴으로써 그녀 자신과 잉글랜드를 적대시하는 유럽 내 적들을 차례로 무장 해제시켰다. 이렇게 얻어낸 정치적인 실리와 두둑한 예물이 잉글랜드의 안전과 그녀의 지위를 보장해 준 것이다.엘리자베스 결혼 전략, 득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등극할 당시, 그녀는 꽃다운 스물다섯이었다... 2024. 7. 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