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농노제3 [러시아사]#39_알렉산드르 2세 암살과 레닌의 탄생 알렉산드르 2세 암살 농노를 해방한 알렉산드르 2세는 '해방 황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제 군주였다. 농노를 해방한 것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의 진심은 독일 철혈재상인 비스마르크와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황관은 내게 권력의 달콤함을 주었소. 이 황관을 잃는 것은 나의 국민과 민족의 재난을 의미하는 거요." 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생각한 그는 더 이상의 개혁을 거부했다. 그는 막 싹트고 있는 악의 유혹에서 러시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유혹이 언젠가는 사회의 재난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내적으로는 한발 더 나아간 개혁을 원하는 이들을 최고 치안위원회를 통해 공격함으로써 유혈 진입했으며, 대외.. 2024. 2. 11. [러시아사]#37_농노제, 러시아 발전의 발목을 잡다 러시아의 발목을 잡는 농노제 유럽의 산업혁명으로 인해 러시아는 이내 영국, 프랑스 같은 국가에 뒤처지고 말았다. 러시아는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산업혁명에 직면해서도 수동적이고 느릿느릿한 태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농노제는 러시아 산업화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한 크림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봉건 농노제의 패배를 상징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유럽에서의 모든 패권을 잃어버렸다. 러시아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였다. 고질병 같은 농노제는 점점 러시아의 활력을 빼앗아 갔다. 러시아의 정치계는 뇌물과 부패가 성행했고, 아무렇지 않게 국고에 손을 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벌건 대낮에 뇌물을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다. 한 번은 니콜라이 1세가 군관을 시켜 당시 추진되던 공사의.. 2024. 2. 9. [러시아사]#28_예카테리나, 표트르의 공통적 면모와 농노제 예카테리나와 표트르의 공통점과 차이점 1720년대~30년대, 러시아는 발전을 계속하기는 했지만, 발전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여러 분야에 많은 장애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때 예카테리나 2세가 표트르의 대업을 계승했다. 표트르 대제가 발트해 연안의 영토를 손에 넣는 임무를 완성했다면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가 이루지 못했던 두 번째 문제인 흑해를 러시아의 영역권으로 만드는 임무를 완수했다. 예카테리나는 크림반도에서 대립 구도를 이루던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일에 예카테리나는 적지 않은 시간과 힘을 쏟았다. 한편으로 여제는 국가 질서를 강화하는 데도 노력했다. 귀족 계층에 힘을 싣고, 군대의 힘을 강화했으며, 산업과 경제, 문화의 발전을 추진해 나간 것이다. 그녀는 표트르 대제의.. 2024. 1. 3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