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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117

[일본 근현대사]#25_메이지 유신, 계몽의 서막 메이지 6년(1873년), 역사적으로 유명한 계몽 학술 단체인 '명육사'가 탄생했다. 그해 7일, 미국 주재 일본 공사 모리 아리노리가 귀국한 후 문학계 및 교육계 유명 인사들을 주축으로 학술 단체를 조직하고 문명개화 정책을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메이지유신 계몽운동 니시무라 시게키의 노력으로, 츠다 마미치와 니시 아마네, 나카무라 마사나오, 가토 히로유키, 미쓰쿠리 린쇼, 미쓰쿠리 슈헤이, 스기 고지,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 제일의 서양학자들이 학술 단체 조직에 대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9월, 비로소 명육사가 설립되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대표로 추대되었지만 그가 고사하여 스기 고지가 초대 대표가 되었다. 이듬해 3월, '명육잡지'가 발간되었다. 니시무라 시게키는 창간호의 창간 취지문에서 "일본의 .. 2024. 1. 3.
[일본 근현대사]#24_메이지 유신, 개화의 바람이 불다. 1873년 3월 20일 오후, 황궁에서 천황의 시중을 드는 여관들이 여느 때처럼 천황이 있는 어학문소에 도착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천황의 머리를 빗겨주고, 당시의 궁중 풍습에 따라 천황의 얼굴에 분과 연지를 발라주어야 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간 여관들이 그 자리에서 멈칫 서더니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천황이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것이 아닌가. 이는 일본 역사상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서양 문명을 좇아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일본인들은 머리를 길게 길렀다. 그리고 무사들은 양쪽에 검을 차고 다닐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자 생활 풍습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계급 제도가 매우 엄격해 화족과 평민의 통혼은 금지되었고, 옷차림만으로도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를 판.. 2024. 1. 2.
[일본 근현대사]#22_메이지 유신 초기, 면직물과 통신 분야 생사(삶아서 익히지 않은 명주실)는 일본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오랫동안 총수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었다. 당시 들여올 게 많았던 일본은 외국과의 무역에서 만성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생사가 외화 수입을 벌어다 주는 몇 안 되는 품목이었다. 메이지 유신 초기, 면직물 산업 그러나 메이지 초기에 기술이 낙후되고 런던에서 막대한 양의 일본 생사가 조악한 품질로 인해 폐기되는 사건이 일어난 후, 일본 생사의 명성은 급격히 하락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프랑스인들을 초빙해 관영 생사 공장을 건설하고 프랑스로부터 기계와 증기선을 도입했다. 이 공장이 건설되자 정부는 전국에 있는 사족의 아내와 딸들에게 모두 이 공장으로 와서 기술을 배우도록 하여 신기술을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데 힘썼다... 2024. 1. 1.
[일본 근현대사]#21_메이지 유신, 식산흥업 정책을 실시하다 1872년, 도쿄에서 요코하마에 이르는 일본 최초의 철도가 개통했다. 많은 일본인이 개통기념식을 구경하기 위해 도쿄 신바시에 몰려왔다. 1874년에는 오사카-고베 철도가 건설되었고, 1877년에는 교토-오사카 철도가 개통되었다. 도쿄-요코하마 철도는 정부가 런던에서 100만 파운드의 공채를 발행해 건설한 것이었다. 일본 철도 산업의 발전 메이지 초기에 철도 건설을 지휘했던 이노우에 마사루는 훗날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메이지 초기에는 서양식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 없었다. 철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 측량과 설계, 시공 및 기차 운전은 모두 외국인이 담당했다. 기수라고 불리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이 외국 기술자를 따라다니며 일본인 노동자들과의 통역을 도맡아 했다. 당시 일본인 노동자들은.. 2023.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