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근대사5 [영국]#45_유럽내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견제하다 젠킨스 귀 전쟁 때로 전쟁은 상상을 뛰어넘는 해괴한 이유나 사소한 일에서 촉발되기도 한다. 강대국 간의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때마침 발생했다. 1738년 의회가 개회 중일 때, 로버트 젠킨스라는 영국 선장이 하원을 찾아왔다. 그는 잘린 귀가 담긴 병을 꺼내 보이며 1731년에 스페인 경비대에 나포되었을 때 귀를 잘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의회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를 실현해 줄 것을 청원했다. 젠킨스 선장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젠킨스의 출현은 영국 의회의 반스페인 정서에 불을 지폈다. 정권을 잡고 있던 휘그당 당수 로버트 월폴은 여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영국 군함을 지중해로 파견했다. 영국.. 2024. 8. 12.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죽음과 가난해지는 스페인 펠리페 2세 영면하다 펠리페 2세도 나이가 들자 궁전을 산책할 때 늘 그가 총애하던 에우헤니오에게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었다. 펠리페 2세는 여전히 성실하고 엄격했지만 때때로 그를 괴롭히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596년 엘에스코리알 궁전에 매우 고통스러운 신음이 울려 퍼졌다. 늙은 왕 펠리페 2세의 병이 또다시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이럴 때면 그는 항상 궁전 안에 있는 가족묘로 가곤 했다. 대리석 조각상 아래 그의 아버지 카를 5세가 묻혀 있고, 그 옆에는 그의 어머니이자 포르투갈 공주인 이사벨이 잠들어 있었다. 또한 그의 세 부인도 이곳에 잠들어 있었으며 나머지 한 명인 메리 튜더는 이미 30년 전 런던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펠리페 2세는.. 2024. 6. 8. [스페인]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몰 스페인의 무적함대 1588년 초, 리스본에서 영국 침공을 준비 중이던 스페인 함대 지휘관 산타크루스 후작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무적함대는 이미 리스본에 집결해 있는 상태였다.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30여 척의 스페인 함대가 모여 있는 리스본 항구의 당시 전경은 수많은 돛대가 마치 밀림처럼 보였고, 병사들과 선원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항구에는 군수 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펠리페 2세는 시도니아를 함대 총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시도니아는 해전 경험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그가 총지휘관으로 임명되자 많은 사람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시도니아 역시 장군이었고, 병사들은 그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 함대의 계획을 이미 .. 2024. 6. 7. [스페인, 포르투갈] 두 개의 나라, 하나의 왕국 스페인 펠리페 2세 vs 포르투갈 안토니오, 왕위 다툼 1579년에 열린 의회에서는 교회, 귀족, 평민 대표 10명이 모여 왕위 계승 문제를 협의했다. 그러나 이 의회에서 결론을 내기 전에 엔리케 국왕이 먼저 죽었다. 엔리케는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5명의 총독이 모여 임시로 대리 통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이 이미 펠리페 2세에게 매수당한 상태였다. 이때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경 지역에서는 스페인 군대가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무력으로 침입했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경쟁자가 성급히 행동을 개시했기 때문에 펠리페 2세도 서둘러 군대를 움직였다. 클라투 수도원 원장 안토니오는.. 2024. 6. 4.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