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3 [스페인] 콜럼버스, 1492년 10월 12일 아메리카에 도착하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출항 1492년 8월 3일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던 맑고 고요한 날이었다. 오전 2시경 콜럼버스는 산 호르헤 교회에서 성찬식을 치렀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 기함에 올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출항을 지시했다. 소규모 함대의 니냐 호, 핀타 호, 산타 마리아 호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팔로스항을 떠났다. 이즈음 포르투갈인들은 길이 70피트에 60톤짜리 캐러벨 선을 발명했다. 이 배는 갑판 아래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넓지는 않았으나 흘수선(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배와 수면이 접하는, 경계가 되는 선)이 낮아 해안에 접근하거나 작은 항만을 탐험하기에 적합했다.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원정 탐험 때 대부분 이 배를 이용했다. 캐러벨 선은 대부분 삼각 돛대를 달았는데, 약.. 2024. 5. 9. [스페인] 가톨릭, 종교 재판소 그리고 콜럼버스 이사벨 여왕의 종교 이사벨 여왕은 가톨릭 수호자로 스페인 통일을 촉진했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이베리아반도에서 아라비아인들을 몰아냈다. 그러나 통일 후에도 그녀가 해결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었다. 우선, 그녀는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일련의 법률을 제정했으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국가 기관을 설립했다. 이사벨 여왕이 세운 통일 국가의 영토는 무어인이 점유하고 있던 스페인 남부 카스티야,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스와 북부 바스크 지역까지 포함되었다. 이사벨 여왕은 독실한 가톨릭 수호자로 종교 부분에서만큼은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했는데, 일례로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아랍인과 유대인을 이베리아반도에서 모두 쫓아내 버릴 정도였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한 것도 종교적 이유가 컸으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2024. 5. 9. [스페인] 역사를 바꾼 여왕의 최후 선택,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하다 역사를 바꾼 포르투갈, 스페인의 결정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에 입성하는 그 순간 포르투갈에서 온 한 항해사가 초조하게 여왕과의 두 번째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여왕과 스페인에 큰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사람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미 8년을 기다렸다. 그는 스페인에 오기 전 포르투갈에서 가정을 이루고 많은 항해 경험을 쌓았다. 그는 매일 리스본의 항해사들과 드넓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상상했다.'서쪽으로 가면 중국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포르투갈, 콜럼버스의 제안을 거절하다 콜럼버스가 포르투갈에 도착하기 전 포르투갈 국왕 아폰수 5세는 이미 피렌체의 천문학자 토스카넬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한 바 있다.. 2024. 5. 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