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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포르투갈&스페인

[스페인] 역사를 바꾼 여왕의 최후 선택,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하다

by 티제이닷컴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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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포르투갈, 스페인의 결정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에 입성하는 그 순간 포르투갈에서 온 한 항해사가 초조하게 여왕과의 두 번째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여왕과 스페인에 큰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사람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미 8년을 기다렸다. 그는 스페인에 오기 전 포르투갈에서 가정을 이루고 많은 항해 경험을 쌓았다. 그는 매일 리스본의 항해사들과 드넓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상상했다.
'서쪽으로 가면 중국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콜럼버스 초상화
콜럼버스


포르투갈, 콜럼버스의 제안을 거절하다

 콜럼버스가 포르투갈에 도착하기 전 포르투갈 국왕 아폰수 5세는 이미 피렌체의 천문학자 토스카넬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한 바 있다. 토스카넬리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참고하여 한 장의 지도와 함께 답장을 보냈다. 내용은 '서쪽으로 항해해 중국, 일본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이었다. 1481년 콜럼버스는 이 편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매우 흥분한 상태로 토스카넬리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얼마 후 토스카넬리로부터 더욱 고무적인 내용이 담긴 답장과 지도를 받았다. 이것이 콜럼버스가 대담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1484년 콜럼버스는 당시 포르투갈 국왕인 주앙 2세에게 자신의 대서양 횡단 계획을 설명했다. 그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일본까지는 거리가 2,400마일밖에 안 되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항해 능력이면 충분히 횡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앙 2세는 반신반의하며 콜럼버스의 계획을 학술 위원회에 넘겨 심사하게끔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거리가 훨씬 더 멀다고 결론 내리고 국왕이 이처럼 무모한 일을 감행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실제 카나리아 제도에서 일본까지의 직선거리는 1만 600마일이다.

 그렇다면 콜럼버스가 계산한 거리는 왜 실제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을까? 그건 그가 애독했던 책 '톨레미 지리서. 당시 유행했던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그려진 지도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지도에 따르면 지구 전체의 7분의 6이 육지이고 바다는 7분의 1에 불과했다. 유럽과 아시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그사이에 아메리카 대륙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페인, 콜럼버스 항해에 베팅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에서 자신의 대서양 횡단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웃 국가인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당시 전쟁에 여념이 없던 이사벨 여왕은 포르투갈 국왕처럼 콜럼버스의 계획을 학술 위원회에 넘겼다. 콜럼버스는 어쩔 수 없이 그라나다가 함락될 때까지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는 포르투갈과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의 부부 왕 역시 그의 계획을 정식으로 거절했다. 콜럼버스는 다시 짐을 꾸려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국왕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프랑스로 길을 떠난 직후 생각이 바뀐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 다시 콜럼버스를 불러들였다. 다시 그라나다로 돌아온 콜럼버스는 여왕을 만나 항해와 관련된 협상에 들어갔다. 이사벨 여왕은 '마지막 1분'의 과감한 결정으로 새로운 해군 지도자와 거대한 신대륙 영토를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그라나다 부근 산타페에서 콜럼버스와 스페인 왕실은 3개월 동안 긴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하는 콜럼버스와 이사벨 여왕은 모두 흥정에 능한 상인과 다름없었다. 1492년 4월 17일 두 사람은 드디어 협상을 매듭지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스페인의 부부 왕은 콜럼버스를 앞으로 그가 발견할 모든 섬과 육지의 통치자로 임명한다.
  2. 콜럼버스를 그가 발견한 영토의 부왕 및 총독으로 임명한다.
  3. 콜럼버스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금, 은, 진주, 보석, 향신료의 10분의 1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4. 그 지역의 상품과 그와 관련된 소송에 대해서는 콜럼버스나 그의 대리인이 관할한다.
  5. 콜럼버스에게 그 지역에 정박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이윤의 8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콜럼버스가 예상한 대서양 횡단 계획의 총경비는 200만 마라베디였다. 이것은 매달 지급해야 할 선원들의 급료 25만 마라베디를 제외한 급액이었다. 돈키호테가 부하 산초에게 준 급료가 하루에 26마라베디였으니 200만 마라베디면 상당한 액수였다. 여왕은 자신이 쓰고 있는 왕관의 보석이라도 팔아서 경비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왕실 이름으로 국고에서 140만 마라베디를 빌렸고, 콜럼버스도 주변 사람을 통해 은행에서 25만 마라베디를 빌렸으며, 나머지는 그를 지지하는 한 대신이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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