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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중국2

[포르투갈] 마카오, 나가사키까지 진출한 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아시아 진출, 마카오를 넘어 나가사키로 15세기까지 중국은 포르투갈에겐 여전히 신비의 나라였다. 그전까지는 주로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 국왕은 실크로드를 대신할 해상 항로를 개척해 중국의 상품을 리스본으로 운송할 계획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말라카는 바로 중국 무역을 위한 주요 거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포르투갈 정부가 세케이라를 파견해 말라카를 공격하러 갔을 때 말라카의 술탄은 급히 명나라 황제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명나라 무종은 술탄의 요청을 묵살하고 오히려 그를 질책하는 칙서를 보냈을 뿐이다. 16세기 중엽 포르투갈은 고리를 말린다는 핑계로 중국 마카오에 정식으로 장기 체류하기 시작했다. 또 일본 나가사키에 무역 상관을 세움으로써 포르투갈은 나가사.. 2024. 5. 12.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포르투갈, 틀에 갇힌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유럽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이슬람 문명과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덕분에 이들은 유럽 외에도 아프리카 북부 및 아시아에 이르는 무역 항로에 대한 정보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포르투갈이 항해 대발견에 나서게 된 주요 요인이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비유럽 문명, 특히 아라비아의 과학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아라비아 과학은 특히 천문학과 수리학에서 유럽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접촉과 교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유럽을 벗어나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지.. 2024.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