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대발견2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새로운 향로 무역 루트를 찾으러 동방의 향료가 유럽에 이르는 길 15세기 유럽의 경제 중심지는 지중해였다. 베니스, 제노바, 피렌체의 크고 작은 선박이 지중해와 북해를 넘나들었다. 이들은 동방에서 가져온 각종 사치품을 유럽 각지로 운반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1423년 베니스 총독이 자랑한 업적을 살펴보면 당시 베니스는 소형 선박 3,000척, 중형 선박 300척, 대형 전함 45척에 선원 3만 6,000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매년 무역 거래액이 1,000만 두카토에 달했는데, 당시 교황의 시종이 1년에 30 두카토를 받았다고 하니 그 거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베니스 상인을 질투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향료 무역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향료의 가치는 황금에 견줄 만했다. 유럽인들은 고기를 요리하거.. 2024. 5. 7.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왕자이자 그리스 기사단장이었던 엔리케 포르투갈이 최초의 해양 탐험 국가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일 처음 항해를 국가 차원에서 계획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켰다. 따라서 포르투갈의 항해 대발견은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의 200여 년 항해 노하우는 철저한 계획과 체계 아래 조직적으로 재정비되어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포르투갈의 아프리카(세우타) 점령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1415년 세우타 점령을 포르투갈 해외 영토 확장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북서 아프리카의 도시 세우타는 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가 이끄는 군대에 함락당했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점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슬람으로부터 세우타를 빼앗아 주앙 1세의 위엄을 드높이고 더.. 2024. 5. 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