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러시아65 [러시아사]#59_집권 후 스탈린의 적극적인 개혁 스탈린의 적극적인 개혁 레닌과 달리 스탈린은 가까운 미래에 유럽에서 혁명이 발생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1920년대에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스탈린은 다음과 같은 개혁을 추진했었다. 첫째, 소련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려 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소련은 이미 풍부한 자원과 인구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스탈린은 소련을 선진국으로 만드는 일에 가장 먼저 착수했다. 비록 1등이 되진 못하더라도 3등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둘째, 단일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스탈린은 아무리 강한 연맹 공화국이라도 결국 각 민족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중앙에서 분리되려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어 교육을 통해 각 민족을 융합하려 했다. 물론 모든 민족은 자신만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 2024. 3. 9. [러시아사]#58_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1943년 2월 2일, 200여 일 동안 꿋꿋하게 버틴 소련의 적군은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소련에서의 전쟁은 물론 세계대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45년 5월 1일은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의 승전고가 울린 날이었다. 이날 예고로프 중사와 칸타리아 중사는 독일의 제국의회 의사당 꼭대기에 붉은 깃발을 꽂았다. 그 하루 전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나치 정권은 와해하고 말았다. 그리고 7일 후 독일은 소련의 주코프 장군에게 투항을 알려왔다. 독일이 패망한 그해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들은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는 대국적 색채를 강하게 띠는 회담으로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세 개 국가가 전후 처리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이는 .. 2024. 3. 9. [러시아사]#57_소련, 제2차 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11월 7일은 소련의 10월 혁명 기념일이다. 하지만 1941년 11월 7일은 예전과 달랐다. 독일군이 이미 모스크바로 진격해 오는 상황이었기에 소련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신세였다. 그날 오후, 천지는 눈으로 뒤덮였고 날씨는 평소보다 더 추웠다. 하지만 시민들은 소리 높여 군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으며 붉은 광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밤 9시, 레닌의 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스탈린이 연설을 시작했다. "전 세계가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침략자 독일의 억압 속에서 유럽인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위대한 해방의 사명은 이제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절대 이 숭고한 사명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미하일 쿠투조프의 용기가 우리를 일어서게 할 것.. 2024. 3. 8. [러시아사]#56_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 스탈린 집권 당시 소련의 국제 관계 정권을 잡은 스탈린은 곧바로 소련의 대외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은 코민테른이 1943년에 해산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코민테른의 마지막 회의는 1935년 여름에 열렸다. 그 회의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 하나 결정됐는데, 바로 인민전선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이었다. 즉, 더 이상의 혁명을 포기하고 반파시스트를 부르짖는 민주 세력과 함께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정권을 획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의회 노선이다. 스탈린은 소련이 동서로부터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온 힘을 다해 잠재적인 동맹국들과 협정을 맺고 그들과 함께 외부의 침략을 막으려 했다. 1934년, 소련은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사실 그전까지.. 2024. 3. 8. 이전 1 2 3 4 5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