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영국61 [영국]#4_정복왕 윌리엄 1세 윌리엄, 잉글랜드의 왕이 되다 영국의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윌리엄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면서 배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지고는 오히려 "잉글랜드를 이 손안에 넣었다."라고 큰소리치며 일어났다고 한다. 그가 잉글랜드 정복에 얼마나 들뜨고 집착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침략자들은 보름 동안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서식스의 헤이스팅스에 이르렀다. 이윽고 윌리엄이 이끄는 5,000명의 정예부대와 헤이스팅스의 산등성이에 진지를 구축한 7,000명의 해럴드 측 군사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해럴드가 조직한 방어진이 마치 견고한 석벽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윌리엄의 군대는 하루 종일 화살과 기병대의 공격을 번갈아 퍼붓고도 .. 2024. 6. 16. [영국]#3_1066년, 영국 역사의 변곡점 '왕위쟁탈전' 1066년, 영국의 왕위쟁탈전 기원후 1000년이 지나면서 잉글랜드는 통일을 이루고 덴마크의 지배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할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11세기 전반기에 잉글랜드의 왕위는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막강한 세력을 가진 귀족들은 기회만 되면 왕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각축을 벌였다. 독실한 그리스도교였던 참회왕 에드워드(1003?~1066)는 이런 정치판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애착보다 경건한 신앙심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세속 왕국보다는 하나님의 왕국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1066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임종 때 웨식스 백작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도 하고, 그 훨씬 전에는 자신의 먼 친척인 노르.. 2024. 6. 14. [영국]#2_브리타니아-로마 제국의 속주 브리타니아,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다 기원후 43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BC 10 ~ AD 54)는 다시 브리튼을 정복하여 로마 제국의 속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원전 54년에 카이사르의 군대가 브리튼 섬을 떠난 후, 거의 1세기가 다 되도록 로마는 내분으로 인해 브리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근 30년간이나 정복 전쟁으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 황제와 군인들은 오랫동안 참아온 정복욕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다. 이때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브리튼이었다. '브리튼 정복자'야말로 정복욕의 물꼬를 터줄 최적의 명분이었다. 그는 위대한 카이사르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로마 군대의 사명이라 여기고 브리튼 원정을 결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43년, 로마 군단의.. 2024. 6. 13. [영국]#1_카이사르-브리튼 전기 카이사르-브리튼 전기 고대 로마 공화국의 통치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는 '갈리아 전기'에서 브리튼 원주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브리튼족은 모두 대청이라는 풀을 이용해 온몸을 물들이고, 얼굴색은 특히 파랗게 보이도록 했다. 그래서 전투 중에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또 그들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머리와 콧수염을 제외한 온몸의 털을 밀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십여 명의 남자들이 한 아내를 공유하거나 형제간 또는 부자지간에 공유하는 일도 흔하다. 만약 이들이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녀가 처녀였을 때 가장 처음 접한 남자의 아이로 간주한다."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던 로마인의 눈에는 브리튼족이 야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원정하던 중에 이 브리튼.. 2024. 6. 12. 이전 1 ··· 12 13 14 15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