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영국61 [영국]#8_왕권이 하락되고 귀족의 권한이 향상된 과정 증세 또 증세 존 왕은 잉글랜드에서 차츰 군비를 확대하고 임의로 세수를 늘리는가 하면, 귀족들의 영지를 자기 재산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봉건적 규범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 기록에 따르면, 존 왕은 이때 병역면제세를 16배, 귀족들의 영지상속세를 100배나 올리고 동산에 대한 세금은 배로 늘렸다고 한다. 그는 또 상업세를 신설해 모든 수출입 화물의 가치에 따라 그 15분의 1을 세금으로 물리기도 했다. 교회도 더 이상 성역은 아니었다. 존 왕은 교회에까지 손을 뻗쳐 1209~1211년의 3년 동안 교회 수입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이 2만 8,000파운드에 달했다. 소, 양, 보리의 값도 배 이상 껑충 뛰었다. 이것이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인플레이션일 것이다. 이렇듯 갈수록 .. 2024. 6. 20. [영국]#7_실지왕(Lackland) 존, 영국의 왕이 되다 서유럽의 봉건제도 서유럽의 봉건제도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게르만족이 처음 실시한 제도이다. 이는 토지 분봉에 기초하여 권리와 의무 관계를 설정한 일종의 사회, 경제 제도였다. 이 제도를 통해 각 계층의 귀족들에게 토지가 분배됨에 따라 정치권력과 사법권, 정치적 특권 등도 나누어졌다. 즉, 봉건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은 바로 분권과 지방화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서유럽 봉건사회에서는 분열과 대립,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로마 제국'처럼 강력한 통일 제국을 만들고자 했던 서유럽의 왕들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유럽 봉건국가들의 공통점은 토지 분봉과 노역을 기반으로 한 등급제 사회이자 장원제 사회라는 것이었다. 영주와 봉신 간에는 계약 관계가 성립되었고, 각기 다른 권리와 의무를 .. 2024. 6. 19. [영국]#6_'둠즈데이북', 더 많고 확실한 세금을 거두기 위해 토지를 정리하다 토지조사대장 '둠즈데이북' 1085년, 덴마크 국왕 크누트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잉글랜드는 바이킹 해적들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던 불운의 땅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덴마크가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잉글랜드 침략계획을 포기하면서 곧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윌리엄 1세는 이 땅의 국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급선무는 잉글랜드의 경제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세금을 정확히 징수하여 국가와 군대가 재정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영국 역사상 초유의 대규모 경제조사 작업이 개시되었다. 윌리엄은 조사위원을 파견하여 잉글랜드 전역의 도시와 촌락을 돌며 상세하게 조사하도록 했다. 특히 각급 봉신 및 자유농이 소유한 토.. 2024. 6. 18. [영국]#5_윌리엄 1세와 솔즈베리 서약 솔즈베리 서약 잉글랜드 남부 윌트셔에 자리한 소도시 솔즈베리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고도이다. 또한 선사시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가 발견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도시이기도 하다. 스톤헨지는 수십 톤에 달하는 무겁고 거대한 돌기둥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이 유적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누가 어떤 방법으로 건조했는지, 그리고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인해 스톤헨지는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신비한 후광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국 역사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면 이 소도시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 스톤헨지 못지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1086년 8월 1일, 정복왕 윌리엄은 잉글랜드에서 토지를 보유한 모든 봉건 귀족을 솔즈베.. 2024. 6. 17. 이전 1 ··· 11 12 13 14 15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