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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by 티제이닷컴 2023.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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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지리적 특성이 이러한 만큼 러시아에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지게 된다. 러시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먼저 서양 국가에 관심을 드러낸 사람은 10세기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다신교를 믿고 있었는데, 비잔틴에서 동방정교를 받아들인 그는 키예프의 시민들에게 드네프르 강에서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 최초로 서양과의 접촉을 시도한 것이면서도 유럽 문명과 직접적인 관계를 만든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서양과 긴밀히 연결되는 듯했으나, 13세기 동쪽에서 말을 탄 몽골족들이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13세기부터 2세기 동안, 몽골은 러시아를 점령했고, 이 시기에 러시아에는 동양의 여러 문화와 사상이 들어오게 된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겨내는 동방의 진리와 변방국인 몽골의 대정복을 통해서 비슷한 위치에 있던 러시아도 무언가를 느꼈으리라 생각해본다.

 

 몽골의 잔혹한 통치로 인해, 많은 러시아인이 동방에 대해 멸시와 공포가 뒤섞인 배척 심리를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00년이 지나 몽골의 힘이 빠지자 러시아는 다시 한번 서방 국가로 눈길을 돌렸다. 1472년 모스크바에서는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쌍두 독수리 문장을 몸에 두른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는 성대한 의식을 치렀다. 그 공주는 바로 소피아로,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멸망한 비잔틴 제국의 공주였다. 로마 교황의 속내는 러시아와의 협공으로 오스만에 맞서려는 것이었지만 러시아는 다른 의도를 갖고 있었다. 소피아가 러시아에 입성함으로써, 러시아가 기독교 세계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노렸다. 소피아 공주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반 3세는 스스로가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임을 선포했다. 그리고 모스크바를 '제3의, 그리고 영원한 로마'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쌍두 독수리는 러시아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서유럽에서 기독교는 이미 분열될 대로 분열이 되고 있었는데, 러시아는 자국이 기독교의 정통 계승자라 여기며 엄청난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 1547년, 이반 3세의 손자인 이반 4세는 대공이라는 칭호를 던지고 본인을 '차르'로 공식 선포했다. '차르'는 로마의 통치자인 '카이사르'와 같은 권력을 의미하는 슬라브계 국가에서 군주를 의미하는 칭호이다. 이반 4세는 매우 잔혹한 수단을 이용해 러시아의 전제 통치를 확립했는데, 이러한 전제 정치는 20세기 초 소련이 등장하기까지 이어졌다. 종교는 서방의 기독교였지만, 통치 방식은 황제가 자신의 권력에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동방국이었던 몽골의 방식을 따르며, 종교와 권력을 연결하려 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종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러시아 농민들은 황제에게 본능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농민들은 황제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받는 고통은 황제인 '아버지'와는 무관하며, 이 모든 고통이 '아버지'를 둘러싼 간신들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렇게 기독교를 뒤에 업고 러시아가 세계사의 무대로 들어서게 된다.

러시아의이반3세
이반 3세.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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