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2세 암살
농노를 해방한 알렉산드르 2세는 '해방 황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제 군주였다. 농노를 해방한 것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의 진심은 독일 철혈재상인 비스마르크와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황관은 내게 권력의 달콤함을 주었소. 이 황관을 잃는 것은 나의 국민과 민족의 재난을 의미하는 거요."
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생각한 그는 더 이상의 개혁을 거부했다. 그는 막 싹트고 있는 악의 유혹에서 러시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유혹이 언젠가는 사회의 재난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내적으로는 한발 더 나아간 개혁을 원하는 이들을 최고 치안위원회를 통해 공격함으로써 유혈 진입했으며, 대외적으로는 7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중국의 영토를 빼앗아 오기도 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과거를 그리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방 황제의 영광은 점점 퇴색되어 갔다. 결국 1879년 8월, 인민의 의지파는 알렉산드르 2세에게 사형을 언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전문 암살단을 조직해 알렉산드르 2세를 살해하려 했지만 이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1881년 3월 1일, 인민의 의지파는 다시 한번 암살을 계획했다. 이번 계획을 조직한 이들 중에는 젤라보프와 페로프스카야가 포함되어 있었다. 페로프스카야는 니콜라이 1세의 대신이었던 L A. 페로프스키 백작의 딸이자 알렉산드르 1세의 대신이었던 W. A. 페로프스키 백작의 조카였다.
황제의 마차가 겨울궁전에서 나오자 매복하고 있던 암살자들은 첫 번째 폭탄을 던졌다. 폭탄으로 황제의 마차는 산산조각났지만 알렉산드르 2세는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군주로서의 위엄을 잃고 싶지 않았던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근위대의 부상을 살피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때 두 번째 폭탄이 날아왔고 알렉산더 2세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암살자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때 시각이 오후 3시 30분이었고, 황제의 나이는 63세였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농민과 노동자의 현실
일리야 레핀이 '볼가강 위의 인부들'이라는 작품을 완성했을 때는 이미 농노제를 폐지한 지 10년이 넘은 때였다. 하지만 해방된 농노들은 여전히 고난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땅에서는 겨우 입에 풀칠할 만큼의 양식을 구할 수 있었으며, 농촌 코뮌은 여전히 그들을 속박하고 있었으며, 농촌에는 산업 발전이 이루어졌을 리 만무했다. 이런 사정은 20세기 초가 되어도 나아질 기미는 안보였다. 1903년, 한 경제학자가 농촌이야말로 가장 좋은 시장이라며 국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기업가들은 "야금 산업을 한낱 말편자나 철 수레바퀴를 만드는 데 쓰려고 하다니,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오."라며 오히려 조소를 보냈다.
20세기 초까지 러시아의 농업 인구는 전체의 6분의 5를 차지했으며 공업 총생산액은 국민 경제의 41퍼센트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국내의 농산물과 국외의 공산품을 맞바꾸는 농업 국가적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의 자산 계급은 기업의 미래와 차르 정부의 운명을 동일시했다. 이는 명백한 정경유착이자 1861년 농노제 개혁이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였다. 이런 사고방식은 러시아의 현대화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했다.
레닌(1870-1924)의 탄생
노동자들의 삶도 농민과 마찬가지로 참담했다.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량, 낮은 임금, 어린 노동자 착취, 열악한 업무환경과 생활환경에 시달려야 했다. 고리키는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는 묶여 있는 개처럼 평생을 무지와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탈출구란 있지도 않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린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밤이다. 하루하루가 밤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러시아 군중을 화폭에 담던 레핀도 아마 볼가강 유역에서 울려 퍼지던 그들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라는 이름의 아기가 태어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낯설 수도 있는 이 아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인 바로 레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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