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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

[러시아사]#63(마무리)_소련 해체, 역사의 뒤안길로 가다

by 티제이닷컴 202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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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중공업 발전의 이면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눈부시게 발전한 신기술은 공업화의 방식과 지표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생물공학, 컴퓨터, 통신 등의 기술은 경제 성장과 경쟁에 있어 엔진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이 시대의 경쟁이란 단순한 군사력이나 군수 산업의 경쟁이 아닌 종합적인 국력의 경쟁을 의미했다. 핵무기를 가리켜 '종이호랑이'라고 했던 마오쩌둥의 말처럼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은 그저 상징적인 위협에만 그쳤다. 매킨더는 20세기 초에 이런 말을 했다. "무장 충돌의 파괴력이 높아지고 군사력의 역할이 줄어들면 국가는 상대적으로 효율 경쟁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이러한 국제 환경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스탈린에서 브레즈네프에 이르기까지 소련 지도자들은 군사력을 국가 경쟁력의 상징이라 생각했기에 언제나 중공업 육성에만 모든 힘을 쏟았다. 신기술 혁명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1970년대에도 소련은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한층 더 군사 기술과 군수 산업 발전에만 박차를 가했다. 과학 기술을 갖추지 못한 생산은 발 빠르게 생산력으로 전환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1970년대에 소련은 마침내 미사일 발사 분야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게 됐지만 그게 과연 국민들의 굶주림보다 실질적 의미가 있을까?

 소련의 계획 경제 체제는 곧 생산력과 국가의 발전을 속박하는 족쇄가 되어버렸고, 조방형 성장 모델은 필연적으로 경제 침체를 불러왔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객관적인 조건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하지만 브레즈네프를 비롯한 소련의 지도자들은 개혁에 유리한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소련의 기존 체제를 약간 손질만 했을 뿐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여전히 중공업 발전을 견지했고 효과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낸 소련은 발전의 정점에서 다시 미끄러져 내려오고야 말았다.

 역사는 언제나 녹록지 않다. 승리의 영광 뒤에는 항상 위기와 재난이 도사리고 있지만 눈부신 업적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안에 숨겨진 함정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문제는 처음부터 존재했다. 다만 그것이 크게 불거져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소련 해체, 역사의 뒤안길로

 '모스크바 일기'는 50년 동안이나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책이다. 1935년에 집필되어 1984년에야 비로소 출판될 수 있었던 이 책의 저자는 바로 로맹 롤랑이다.

 1935년, 로맹 롤랑은 고리키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뜨거운 환영 속에 소련 땅을 밟은 그는 스탈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소련을 이렇게 찬양했다. "내가 본 것은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공산당의 지도하에 국가 전체가 수많은 장애와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질서와 용맹함으로 신세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건강함과 강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독자적인 사고를 하는 작가로서 그는 여러 가지 문제를 발견하기도 했다. 강대국과 비교했을 때 국민의 생활은 너무나 낙후되어 있고 지도자들의 특권 의식은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통해 소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모스크바의 임금, 주택, 식료품 같은 기초 경제 수준은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레닌그라드와 다른 지역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길을 걷다 보면 우리를 향해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남자나 주먹을 휘두르는 늙은 여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독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나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허다했다."

 "국가와 민족을 보호해야 하는 위대한 공산당 지도자들은 오로지 자신들을 특권 계층으로 만드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빵 한 덩어리와 한숨이라도 편하게 쉴 공간을 쟁취하기 위해 힘든 투쟁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던 로맹 롤랑은 과도기에 있는 소련이 잘못을 범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이렇게 말했다. "현재 소련의 정치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정책이나 결정도 결함이 없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스탈린의 정책은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습니다. 나는 세계의 아름다운 미래가 소련의 승리와 단단히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소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일기를 50년 후에 발표하기로 했다. 자신의 책이 혹시나 소련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는 50년 후라면 자신이 우려하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됐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로맹 롤랑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50년이 지난 후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문제들이 나날이 더 심각해졌다. 스탈린 시절 이미 모습을 드러낸 특권 계층은 이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일기가 발표되고 6년 후인 1990년, 크렘린궁에서는 붉은 깃발이 내려졌다. 이로써 붉은색 나이테는 정확히 74개까지만 이어졌다. 소련 공산당이 집권 74년 만에 해체된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 소련은 선대 러시아가 수백 년 동안 하지 못했던 공업화를 눈부신 속도로 완성했으며, 독일과 일본 파시스트를 물리쳤고, 상당히 오랫동안 세계 양극의 한 축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담당했다.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의 해체를 선언한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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