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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

[러시아사]#8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유럽화

by 티제이닷컴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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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1689년 7월, 근위대의 공훈을 의심하던 표트르는 원정에서 돌아온 근위대를 접견하려 하지 않았다. 표트르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던 소피아 공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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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식의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유럽의 건축가들이 설계했다. 유럽식 옷을 입고, 러시아어가 아닌 유럽의 언어로 소통되는 도시,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도시이며, 표트르 대제가 원한 러시아의 모습이 바로 이 도시에 담겨 있었다. 중국의 상하이가 내륙 도시와 다른 모습을 띠듯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귀족, 관리, 군인 할 것 없이 이 도시에 있는 많은 러시아인은 유럽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러시아의 엘리트들은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독일어, 네덜란드어를 배우더니 나중엔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조선업과 군사력을 시작으로 문화로 귀결되는 모습과 흡사하다. 엘리트들은 본인들이 닮고 싶은 대상을 런던, 파리, 베를린, 로마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과는 이질적으로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아버지였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가 완성해 놓은 농노제를 더 잔혹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농노제는 표트르 대제 때가 감히 정점이었다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러시아인들에게 자유는 없었다. 농노뿐만이 아니라 귀족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에 복종하지 않는 국민들은 그 누가됐든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귀족도 결국은 농노를 부리는 노예였을 뿐이다.

 표트르 대제는 종교에도 손을 댔는데, 독립적인 위치를 누렸던 종교는 표트르의 개입을 받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충성하던 비종교인을 종교계 핵심에 배치하기까지 이른다. 심지어 대부분은 군관 출신이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역법도 바꾸었다. 자체적인 역법을 쓰던 러시아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탄생을 역사의 시작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9월 1일이었던 러시아의 신년은 표트르 때부터 1월 1일이 신년이 된다.

 이제 러시아에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게 된다. 표트르 이전의 농노제를 근간으로 한 효율성 없던 러시아, 그리고 유럽을 따라 하기 시작하는 유럽화된 러시아. 이렇게 한 국가에 두 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면,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는 이후 러시아의 역사 곳곳에서 발생하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17년 레닌을 필두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이 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넘어 국제 사회에 러시아라는 국가를 알리는 데에도 기여한 바가 많다. 유럽 국가들은 그의 강력한 해군과 승리도 그렇고, 러시아가 유럽의 문물을 빠르게 흡수하는 모습도 알 수 있었다.

 표트르 개혁이 100여 년이 지난 시점 러시아 귀족들은 대부분을 유럽화에 성공했다. 하물며 러시아어까지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당시 러시아의 귀족들은 러시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구사하였다. 러시아 엘리트들이 러시아인이라는 민족의 뿌리를 점차 잃어버리는 걸 상징한다.

 러시아를 유럽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던 표트르 대제는 유럽과의 관계에 매우 공을 들였지만, 뒤로는 본인의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야만 한다. 유럽에서 배울 건 다 배운 후 그들에게서 돌아서도 늦지 않다.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머리만 그들을 향하고 있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의미다. 즉, 유럽의 좋은 것들을 먼저 습득한 뒤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표트르의 작은 유럽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을 닮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처 : 나무위키

[역사학] -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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