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9년 1월 30일, 영국 국왕 찰스 1세 처형의 날
기록에 따르면 이날은 바람이 가볍게 부는 화창한 날이었다. 수천 명의 런던 시민들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왕의 처형식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화이트홀 궁전 앞 광장에 운집했다.
광장이 바라다보이는 왕실 연회장의 방 안에서는 찰스 1세가 자신의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에는 찰스 스튜어트 혼자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등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을 보면서 자신이 군주였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따뜻한 겨울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찰스 1세는 아직 어린 두 아들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홀로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완전히 버림받은 운명의 가련한 국왕은 최후의 기도를 마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는 추위에 떠는 자신이 혹시라도 두려움에 떠는 것으로 오해를 살까 봐 옷을 두 벌이나 껴입었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국왕으로서의 권위와 위신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찰스 1세가 법원 판결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행관들은 처형장 주변에 갈고리와 창 등을 비치해 두었다. 혹시라도 국왕이 저항하면 이 도구들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찰스 1세는 이 따위 도구에 자신의 존엄성을 뭉개버리고 싶지 않았다. 국왕의 자존심으로는 이런 구차한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찰스 1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국왕이었다.
동행한 주교와 기도를 올린 후, 찰스 1세는 "국왕은 영원한 국왕이다. 왕권은 신성한 것이며 인간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박탈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대십자훈장을 주교의 손에 넘겨주고는 단두대 아래의 군중들에게 말했다. "짐은 우리를 이 지경까지 오게 한 그 무리를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짐은 너희들이 영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용서는 국왕의 특권이리니. 이제 나는 이 특권을 너희에게 주고 떠나겠다."
군중들은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했다. 찰스 1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을 용서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 소리쳤다. "군주와 신하는 엄연히 다르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때 처형대에서 누군가 실수로 도끼를 떨어뜨렸다. 국왕은 뒤돌아보며 "도끼를 망가뜨리지 말아 주게. 그러면 목이 잘릴 때 몹시 아플 걸세."라고 위엄있게 말했다.
마지막 순간, 찰스 1세는 집행관들이 갈고리와 창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는 국왕의 마지막 저항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집행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보게, 자네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그 물건은 별로 쓸 일이 없을 걸세. 다만 부탁이 하나 있네. 내가 무릎을 꿇거든 잠시 기다려주겠나? 기도를 마치고 나면 내가 양손을 들겠네. 그때 도끼를 사용하게나."
집행관은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전하."라고 대답했다. 찰스 1세는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왼손을 펴 실크 모자를 꺼내 쓰고는 자신의 긴 머리를 모자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단두대 위에 올려놓았다.
찰스 1세가 현세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반드시 재빠르고 깨끗하게 처리해야 하네."
말을 마친 그는 다시는 집행관을 쳐다보지 않았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국왕은 두 손을 높이 쳐들어 집행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집행관은 도끼를 들어 아주 신속하고 단호하게 국왕의 목을 내리쳤다. 그는 마치 순교하는 성인처럼 의연한 태도로 삶을 마감했다. 찰스 1세는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과 일부 귀족들에 대한 애처로움을 표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후세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역사학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32_크롬웰, 영국의 호국경이 되다 (0) | 2024.07.22 |
---|---|
[영국]#31_찰스 1세의 죽음 이후의 영국과 크롬웰 (0) | 2024.07.21 |
[영국]#28_영국내전의 끝, 의회는 승리하고 찰스 1세는 처형당하다 (0) | 2024.07.18 |
[영국]#27_존 햄던 사건 이후, 하원을 무단침입한 찰스 1세 (0) | 2024.07.13 |
[영국]#26_찰스 1세, 영국내전의 전초전 (0) | 2024.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