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67 [일본 근현대사]#7_존왕양이 사상과 막부의 몰락 1860년대 당시 일본 전역에서 외국인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외국인에게 저항하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다. 1862년 9월 14일, 사쓰마번 번주의 후견인인 시마즈 히사미쓰는 양이에 관한 조정의 의지를 막부에 전달한 후 에도를 떠나 귀로에 올랐다. 외국과 갈등한 일련의 사건들 그런데 그의 일행 700여 명이 요코하마 부근 나마무기촌에 다다랐을 무렵, 4명의 외국인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들은 요코하마에서 수출업을 하는 영국인 리처드와 그 회사 직원 클라크, 그리고 홍콩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상인 부부였다. 히사미쓰 일행이 길을 모두 점거하고 행진하자, 이 네 명의 영국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영국인 부인이 타고 있던 말이 무언가에 놀랐는지 갑자기 히사미쓰 일행을 향해 돌진하였다. .. 2023. 12. 22. [일본 근현대사]#6_막부의 대외 개방,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이이 나오스케가 암살당한 후, 막부는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적인 천황의 위엄과 숭배 정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막부는 천황과의 대립적인 분위기를 완화하고, 조정과 막부가 공동으로 통치하는 공무 합체를 실시했다. 그런데 정치 무대에 등장해 막부와의 연합을 통해 내우외환을 극복하고, 봉건 통치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던 웅번 다이묘들 가운데 가장 실력이 막강한 세력으로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 지역)과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 지역)이 되었다. 이 두 번의 연합을 '삿초 동맹'이라 한다. 해안이 인접해 있는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막부 말기에 막부가 무력해지는 것을 보고, 각자의 번에서 먼저 개혁을 실시해 군사력과 경제력을 증강했다. 조슈번은 농촌의 관리 계층을 지원해 농업 생산을 장려하는 것과 동시에,.. 2023. 12. 21. [일본 근현대사]#4_근대화의 태동, 요시다 쇼인과 가나가와 조약 18세기말부터 서양의 군함이 빈번하게 일본 근해에 출몰하는데, 일본의 문을 두드린 횟수는 무려 52차례에 달했다. 가장 먼저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열강은 러시아였다. 개항 전 여러 에피소드 1777년, 야쿠츠크 상인 레베데프가 이끄는 원정대가 홋카이도 앗케시를 압박하며, 마츠마에번과의 통상을 요구했다. 1792년 러시아 사절 락슈만이 통상을 요구하기 위해 홋카이도 네무로를 찾아왔다. 러시아의 정식 사절이 방문하자, 막부도 어쩔 수 없이 해안 방어책을 세웠다. 나아가 서양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서적을 대량 수집하기도 했다. 그 후 일본의 서구파 인사들은 린가쿠(네덜란드어를 통해 서구의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서구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했던 학풍) 연구에 몰두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미국이 일.. 2023. 12. 19. [일본 근현대사]#2_일본의 개항전후 상황과 페리제독 1600년대 일본 에도에는 막번 체제가 수립되었다. 교토와 나고야 사이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 전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반대 세력 사이에 일어난 전투로, 도쿠가와는 동군, 반대 측을 서군이라 하여 '동서 전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전투에서 동군이 승리하게 돼 일본의 전국시대는 최종적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며, 에도 막부가 형성되었다. 개항 전 일본의 상황 일본에는 200여 개의 번과 다이묘가 있었는데, 도쿠가와파가 승리한 후 도쿠가와파 다이묘들은 모두 봉록을 하사 받았다. 반면, 반대파였던 도요토미 세력 쪽 다이묘들은 영지를 잃거나 심하게는 다이묘 신분을 박탈당하기도 하였다. 260여년간 쇄국 체제가 시작됐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기독교로 인해 시작된 내전이었다. 외국 종교를 둘러.. 2023. 12. 18.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