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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계몽2

[러시아사]#35_데카브리스트 실패와 그후 러시아 지식인들의 긍지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뉜 데카브리스트 데카브리스트들은 서유럽 국가 문명에 완전히 부합하는 사회 제도를 실현하려 했다. 그들은 러시아가 매우 낙후되어 있으며 농노제와 군주제가 조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두 가지 방식의 혁명을 제안했다. 온건파는 계몽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서양 제도를 들여와 천천히 농노제와 군주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경파는 더욱 강력한 방식을 원했다. 그들은 무장 쿠데타로 황제와 황족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야만 러시아에 공화국을 세우고 의회를 수립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당시 신하들로부터 데카브리스트들이 농노제를 폐지하고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알렉산드르.. 2024. 2. 6.
[러시아사]#34_데카브리스트와 관련된 몇몇 이야기(데카브리스트 광장과 로맨스) 데카브리스트 광장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유명한 광장이 있다. 참정원 광장이라 불렸던 이곳은 훗날 청동 기사 동상이 세워지면서 표트르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데카브리스트 광장이라 부른다. 바로 1825년 황제의 통치를 거부하고 농노 해방을 부르짖었던 데카브리스트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1825년 12월 14일, 데카브리스트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총성과 포성, 그리고 말발굽 소리와 비명은 러시아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이곳에서 1,261명의 혁명 참가자들과 국민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피가 러시아 땅을 적셨다. 1925년 데카브리스트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데카브리스트 광장이라 부르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피어난 데카브리스트의 로맨스 여담 데카브리스트들의 운명은 그렇.. 2024.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