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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59

[러시아사]#49_신경제 정책 이후 미국과 소련의 무역 신경제 정책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사회주의와 시장 경제를 직접 연결함으로써 농민의 적극성을 끌어내 그들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농민을 사회주의 경제와 결합할 수 있도록 상업을 발전해야만 했다. 상업 분야에 있어 신경제 정책이 가장 먼저 시행했던 것은 공산품을 농산물과 맞바꾸는 물물 교환이었다. 하지만 화폐를 통해 거래하는 방식에 익숙했던 러시아의 아낙들은 물물 교환을 하지 않으려 했다. 게다가 공산품이 도달하는 시간은 항상 늦었다. 그러자 레닌은 국내의 자유 무역과 은행 시스템을 회복하고 국영 백화점을 설립할 것을 선포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오늘날 러시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쇼핑 명소가 된 이 국영 백화점은 1921년 영업을 시작했다. 러.. 2024. 3. 3.
[러시아사]#48_크론시타트 반란과 신경제 정책 1920년, 볼셰비키 정권이 백군을 물리침으로써 러시아의 내전은 종결됐다. 전쟁이 끝나자 러시아인들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화롭던 일상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견디기 힘든 시련인 것처럼 전쟁에서 다시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전쟁이 일어나던 순간부터 모든 것은 전쟁 위주로 돌아갔고 승리 후에는 다음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이렇게 굳어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발전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크론시타트 반란 크론시타트 반란 내전이 끝난 뒤 1921년 3월 크론시타트 해군 기지에서 해병들이 일으킨 반정부 반란 사건이다. 발.. 2024. 3. 2.
[러시아사]#45_10월 혁명과 레닌,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다 레닌의 혁명 준비,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를 설득하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데도 중앙위원회가 여전히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9월 29일, 레닌은 다시 한번 중앙위원회에 제안하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혁명에 찬성하지 않으면 자신이 중앙위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레닌이 여태껏 한 번도 이러한 강경한 입장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레닌의 사직 의향을 담은 편지는 꽤 강력한 파급력을 보였다. 훗날 부하린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레닌의 편지가 너무나도 강경했던 나머지 우리는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누구도 그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의회의 해산을 명령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혁명의 성공을 의심했다. 이 때문.. 2024. 2. 29.
[러시아사]#44_러시아혁명 이전, 점점 커져가는 볼셰비키 세력 레닌의 혜안 사실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레닌을 지지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스탈린과 카메네프가 창간한 '프라우다'(진리라는 뜻의 공산당 기관지)에서도 임시 정부에 대한 태도는 모호했다. 어쩌면 이처럼 역사가 베일을 벗기 전에 그 모습을 파악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역사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점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닥치면 그저 조급한 마음으로 역사의 결정을 기다린다. 또한 한편으로는 남다른 안목을 가진 이를 비웃으면서 자신은 결코 역사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는 레닌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1917년 7월, 임시 정부는 '동맹국에 대한 의무 이행'을 내걸고 러시아군의 출전을 명령했다. .. 2024.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