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8 [프랑스]#3 백년전쟁 : 중세 기사의 몰락, 에드워드 3세의 승리 그리고 흑사병 중세 기사의 몰락 중세 시대 유럽을 종횡하던 기사는 왜 몰락하게 됐을까? 에드워드 3세의 천재적인 전쟁 능력 때문이었을까? 이에 대해 엥겔스가 한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장궁은 대단히 위협적인 무기였다. 이는 영국군이 크레시, 푸아투, 아쟁쿠르 등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엥겔스가 언급한 장궁은 사정거리가 거의 360미터에 달했고, 화살이 시위를 떠날 때의 속도는 초당 60미터 이상이었다. 250미터 밖에 있는 가죽이나 천만 아니라 80미터 이내에서 정면으로 공격할 경우에는 갑옷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50미터 내에서는 뚫지 못할 것이 없었다. 에드워드 1세의 종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182년, 애버게이브니 성을 공격할 때 웨일스.. 2024. 12. 9. [프랑스]#1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시작된 전쟁 프랑스 왕위계승 - 백년전쟁의 서막 14세기 프랑스는 수도 파리를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력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외의 허약함도 지니고 있었다. 그 당시 전 유럽의 관심은 프랑스의 한 궁전에 쏠려 있었다. 그곳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족들이 호화로운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은밀한 밀회를 즐기며 귀부인들과 노닥거리는가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격렬한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 결투는 두 사람이 정해진 규칙에 따랐는데, 이것은 이전 시대 기사도 정신의 잔재였다. 당시 보헤이마 존 국왕은 파리를 '세계에서 기사도의 색채가 가장 강한 곳'이라고 칭송하며 계속 이곳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러나 1331년 파리를 방문한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에게는 전혀 낭만적이지 못한 곳이.. 2024. 12. 7. [영국]#4_정복왕 윌리엄 1세 윌리엄, 잉글랜드의 왕이 되다 영국의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윌리엄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면서 배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지고는 오히려 "잉글랜드를 이 손안에 넣었다."라고 큰소리치며 일어났다고 한다. 그가 잉글랜드 정복에 얼마나 들뜨고 집착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침략자들은 보름 동안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서식스의 헤이스팅스에 이르렀다. 이윽고 윌리엄이 이끄는 5,000명의 정예부대와 헤이스팅스의 산등성이에 진지를 구축한 7,000명의 해럴드 측 군사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해럴드가 조직한 방어진이 마치 견고한 석벽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윌리엄의 군대는 하루 종일 화살과 기병대의 공격을 번갈아 퍼붓고도 .. 2024. 6. 16. [영국]#1_카이사르-브리튼 전기 카이사르-브리튼 전기 고대 로마 공화국의 통치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는 '갈리아 전기'에서 브리튼 원주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브리튼족은 모두 대청이라는 풀을 이용해 온몸을 물들이고, 얼굴색은 특히 파랗게 보이도록 했다. 그래서 전투 중에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또 그들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머리와 콧수염을 제외한 온몸의 털을 밀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십여 명의 남자들이 한 아내를 공유하거나 형제간 또는 부자지간에 공유하는 일도 흔하다. 만약 이들이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녀가 처녀였을 때 가장 처음 접한 남자의 아이로 간주한다."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던 로마인의 눈에는 브리튼족이 야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원정하던 중에 이 브리튼.. 2024. 6. 12.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