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카테리나 2세3

[러시아사]#32_쿠투조프의 일생과 러시아에 찾아온 자유주의 쿠투조프 장군의 일생 쿠투조프는 예카테리나 2세, 파벨 1세, 알렉산드르 1세, 모두 세 명의 황제를 섬겼다. 험난하면서도 찬란했던 그의 일생은 모두 이 세 명의 군주와 관련이 있다. 게다가 그의 인생은 군주에 따라 극과 극을 달렸다. 그가 처음으로 전쟁에서 다쳤을 때 그가 소속됐던 부대의 총사령관은 예카테리나 2세에게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모스크바 군대의 부상자 중 쿠투조프라 불리는 중위가 있습니다. 그는 새롭게 조직된 부대를 통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노련한 군인들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그러자 여제는 쿠투조프에게 1만 루블의 상금을 하사했으며 직접 의사를 찾아가 이렇게 부탁했다. "반드시 쿠투조프의 부상을 낫게 해야 해요. 그는 큰 장군이 될 인물이에요." 쿠투조프는 용맹했을 뿐 .. 2024. 2. 5.
[러시아사]#28_예카테리나, 표트르의 공통적 면모와 농노제 예카테리나와 표트르의 공통점과 차이점 1720년대~30년대, 러시아는 발전을 계속하기는 했지만, 발전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여러 분야에 많은 장애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때 예카테리나 2세가 표트르의 대업을 계승했다. 표트르 대제가 발트해 연안의 영토를 손에 넣는 임무를 완성했다면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가 이루지 못했던 두 번째 문제인 흑해를 러시아의 영역권으로 만드는 임무를 완수했다. 예카테리나는 크림반도에서 대립 구도를 이루던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일에 예카테리나는 적지 않은 시간과 힘을 쏟았다. 한편으로 여제는 국가 질서를 강화하는 데도 노력했다. 귀족 계층에 힘을 싣고, 군대의 힘을 강화했으며, 산업과 경제, 문화의 발전을 추진해 나간 것이다. 그녀는 표트르 대제의.. 2024. 1. 30.
[러시아사]#24_예카테리나 교서와 현실적 한계_Part.1 옛 러시아 사람들은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신속하게 씨 뿌리는 일을 끝내야 했지만 막상 그 일이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의 긴 겨울을 보냈다. 이러한 자연조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불굴의 인내와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기르게 된 건 아닐까? 또한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을 술로 보내며 시간을 낭비하는 버릇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러시아인들을 두고 "엄청난 핍박이 가해져야만 비로소 대단한 인내력을 발휘하는 민족"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에게 동서를 나누는 광활한 영토는 호탕한 기개를, 혹독하게 추운 날씨는 비장함을 물려주었다. 이 때문에 쓸쓸함과 비애는 러시아 예술을 대표하는 정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애는 나약한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으며 정신의 쇠퇴에 기인하.. 2023.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