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7 [러시아사]#23_예카테리나의 영토확장과 유럽식 러시아문화 독일 출신인 예카테리나 2세 주위에는 언제나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게다가 그 주변의 러시아인 모두 유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주의자였던 그녀는 표트르 대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커다란 차이와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한 대신은 예카테리나 2세가 세상을 떠난 후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유럽의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예카테리나 2세가 여제의 자리에 있고 내가 재상으로 있었을 때는 유럽의 대포가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단 한 방도 발사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러시아는 예카테리나 시절 때부터 유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23. 12. 5. [러시아사]#19_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의 쿠데타 옐리자베타가 사망하고 러시아의 국왕 자리에 즉위한 표트르 3세는 자신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예카테리나는 그런 표트르 3세를 보며 걱정하기보다는 기다리고 있었다. 표트르 3세를 대신해 그의 자리를 차지한 본인의 모습을 러시아에 뜻이 없던 표트르 3세는 그저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국정을 처리해 버리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연일 승리하고 있던 러시아 군대에 갑자기 철수 명령을 내리고는 프로이센의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와 평화 협정을 맺어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유럽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평화 협정을 맺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본인이 프리드리히 2세의 열렬한 추종자이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부대를 이끌고 나가 프리드리히 2세의.. 2023. 12. 2. [러시아사]#외전_표트르와 청동기사 [역사학] -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앞선 글에서 말했듯, 표트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면 그의 아들인 알렉세이(Aleksey Petrovich, 1690 ~ 1718)는그렇지 못했다. 배움에 대한 결실도 없었으며, 늘 이 readmyworld.tistory.com 이번에 다룰 주제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여행을 가서 거리를 걷노라면, 만날 수 있는 '청동 기사' 동상이다. 이 동상은 표트르 대제를 기리는 동상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였던 E. M. 팔코네라는 인물에게 예카테리나 2세가 명령하여 주문 제작한 것이다. 예카테리나 2세는 이렇게 함으로써 표트르 대제에 .. 2023. 11. 2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