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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65

[러시아사]#27_예카테리나의 러시아 영토 확장 "나는 빈손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지만 마침내 러시아에 나의 혼수품으로 크림반도와 폴란드를 줄 수 있게 됐다." 예카테리나는 역대 러시아 차르들과 마찬가지로 영토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을 영광스러운 일로 여겼기에 계속해서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벌였다. 전쟁을 좋아하는 여황제의 명령을 받든 수보로프와 쿠투조프는 마침내 표트르 대제조차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냈다. 바로 오스만 튀르크의 수중에 있던 흑해의 북쪽을 모두 뺏어와 장악해 버린 것이다. 예카테리나의 정치력은 침략 전쟁에서도 그 빛을 발했다. "정치는 세 가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바로 환경, 계획, 그리고 시기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녀는 폴란드 영토 획득에도 그 철학을 적절히 사용하였다. 1763년 10월, 폴란.. 2023. 12. 15.
[러시아사]#26_왜 예카테리나는 계몽사상을 포기하였을까 예카테리나의 계몽사상을 토대로 한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노예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를 가장 가까이하는 신하들조차도 예카테리나 2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자신의 이상과 러시아의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예카테리나 본인이 계몽사상을 실현할 이유는 사실 없었다. 쨌든, 그 당시 계몽사상의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이를 강행할 시 그간 쌓아온 모든 업적을 단방에 무너뜨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제국 건설에 있어서 더 필요한 것은 어쩌면 만인의 평등이 아니라 농노제였을 것이다. 저렴한 노동력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니 말이다. 노예는 러시아 제국의 확장과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들은 주인을 위해서는 무료로 .. 2023. 12. 12.
[러시아사]#25_예카테리나 교서_Part.2 예카테리나의 교서는 모두 22장 256조 655항으로 이루어진 풍부한 내용의 법령이다. 이 법령은 대부분 계몽사상가, 법학자,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베껴놓은 것이다. 예카테리나도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이를 인정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나의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나는 몽테스키외의 작품을 베끼고 그의 이름은 언급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천국에서 나의 작품을 본다면 분명 나를 용서해 줄 거예요. 2,000만 국민의 행복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행동을 말이에요. 몽테스키외는 너무나도 인류를 사랑해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의 작품은 바로 나의 기도문입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의 교서는 단순히 외국의 사상을 베낀 것이 아니라 계몽학자들의 사상을 .. 2023. 12. 12.
[러시아사]#24_예카테리나 교서와 현실적 한계_Part.1 옛 러시아 사람들은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신속하게 씨 뿌리는 일을 끝내야 했지만 막상 그 일이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의 긴 겨울을 보냈다. 이러한 자연조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불굴의 인내와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기르게 된 건 아닐까? 또한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을 술로 보내며 시간을 낭비하는 버릇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러시아인들을 두고 "엄청난 핍박이 가해져야만 비로소 대단한 인내력을 발휘하는 민족"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에게 동서를 나누는 광활한 영토는 호탕한 기개를, 혹독하게 추운 날씨는 비장함을 물려주었다. 이 때문에 쓸쓸함과 비애는 러시아 예술을 대표하는 정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애는 나약한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으며 정신의 쇠퇴에 기인하.. 2023.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