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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65

[러시아사]#23_예카테리나의 영토확장과 유럽식 러시아문화 독일 출신인 예카테리나 2세 주위에는 언제나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게다가 그 주변의 러시아인 모두 유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주의자였던 그녀는 표트르 대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커다란 차이와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한 대신은 예카테리나 2세가 세상을 떠난 후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유럽의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예카테리나 2세가 여제의 자리에 있고 내가 재상으로 있었을 때는 유럽의 대포가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단 한 방도 발사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러시아는 예카테리나 시절 때부터 유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23. 12. 5.
[러시아사]#22_예카테리나와 계몽 사상 표트르의 개혁이 군사, 행정, 경제, 기술 분야에 치중했더라면, 예카테리나 2세는 정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현대 러시아 문학과 예술, 사상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예카테리나 2세는 경제만 아니라 사상도 유럽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당시 유럽은 계몽사상이 유행하고 있었고 초기에는 예카테리나 2세도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았다. 예카테리나는 볼테르와 같은 계몽사상가들과 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하였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에는 그녀는 새로운 법률 제정을 위한 법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이 위원회의 대표에는 농노를 제외한 각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가 제정한 정치와 법률에는 계몽사상이 녹아져 있었으나, 실제로 시행되지.. 2023. 12. 4.
[러시아사]#21_예카테리나 개혁과 그 한계점 예카테리나 2세는 당시 러시아 사람들에게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 미녀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고대 오리엔트의 전설적인 여제 '세미라미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예카테리나는 참정원, 총감, 성장들을 통해 러시아 제국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녀의 독재 정권은 나날이 강해져 갔고 관료제 역시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전보다 확실히 발전해 갔다. 이렇게 예카테리나는 홀몸으로 타국에 와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했다면 예카테리나는 오늘날만큼의 명성과 존경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러시아 전체를 장악하고 싶었던 그녀였기에 이제는 러시아의 귀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763년, 그녀로.. 2023. 12. 4.
[러시아사]#20_예카테리나 2세의 경제, 정치개혁 예카테리나 2세는 쿠데타에 성공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러시아의 파탄 난 경제와 고여버린 공무원들. 그녀가 칼을 뽑았다. 첫 과제는 경제 해결이고, 그다음은 바로 관료 정비였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예카테리나 2세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은 참담하였는데, 외국에 주둔하던 주력 부대는 무려 8개월이나 월급을 받지 못해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있었으며, 해군 함대는 사실상 급료를 포기한 상태였다. 당시 국가 재정은 1,700만 루블 정도가 적자였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국고의 수입원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국내의 법 기강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각종 부패 행위가 횡행해 돈만 있으면 법도 쉽게 주무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극악무도한 대역죄이든 .. 2023.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