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240 [영국]#7_실지왕(Lackland) 존, 영국의 왕이 되다 서유럽의 봉건제도 서유럽의 봉건제도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게르만족이 처음 실시한 제도이다. 이는 토지 분봉에 기초하여 권리와 의무 관계를 설정한 일종의 사회, 경제 제도였다. 이 제도를 통해 각 계층의 귀족들에게 토지가 분배됨에 따라 정치권력과 사법권, 정치적 특권 등도 나누어졌다. 즉, 봉건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은 바로 분권과 지방화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서유럽 봉건사회에서는 분열과 대립,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로마 제국'처럼 강력한 통일 제국을 만들고자 했던 서유럽의 왕들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유럽 봉건국가들의 공통점은 토지 분봉과 노역을 기반으로 한 등급제 사회이자 장원제 사회라는 것이었다. 영주와 봉신 간에는 계약 관계가 성립되었고, 각기 다른 권리와 의무를 .. 2024. 6. 19. [영국]#6_'둠즈데이북', 더 많고 확실한 세금을 거두기 위해 토지를 정리하다 토지조사대장 '둠즈데이북' 1085년, 덴마크 국왕 크누트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잉글랜드는 바이킹 해적들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던 불운의 땅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덴마크가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잉글랜드 침략계획을 포기하면서 곧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윌리엄 1세는 이 땅의 국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급선무는 잉글랜드의 경제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세금을 정확히 징수하여 국가와 군대가 재정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영국 역사상 초유의 대규모 경제조사 작업이 개시되었다. 윌리엄은 조사위원을 파견하여 잉글랜드 전역의 도시와 촌락을 돌며 상세하게 조사하도록 했다. 특히 각급 봉신 및 자유농이 소유한 토.. 2024. 6. 18. [영국]#5_윌리엄 1세와 솔즈베리 서약 솔즈베리 서약 잉글랜드 남부 윌트셔에 자리한 소도시 솔즈베리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고도이다. 또한 선사시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가 발견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도시이기도 하다. 스톤헨지는 수십 톤에 달하는 무겁고 거대한 돌기둥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이 유적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누가 어떤 방법으로 건조했는지, 그리고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인해 스톤헨지는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신비한 후광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국 역사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면 이 소도시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 스톤헨지 못지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1086년 8월 1일, 정복왕 윌리엄은 잉글랜드에서 토지를 보유한 모든 봉건 귀족을 솔즈베.. 2024. 6. 17. [영국]#4_정복왕 윌리엄 1세 윌리엄, 잉글랜드의 왕이 되다 영국의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윌리엄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면서 배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지고는 오히려 "잉글랜드를 이 손안에 넣었다."라고 큰소리치며 일어났다고 한다. 그가 잉글랜드 정복에 얼마나 들뜨고 집착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침략자들은 보름 동안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서식스의 헤이스팅스에 이르렀다. 이윽고 윌리엄이 이끄는 5,000명의 정예부대와 헤이스팅스의 산등성이에 진지를 구축한 7,000명의 해럴드 측 군사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해럴드가 조직한 방어진이 마치 견고한 석벽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윌리엄의 군대는 하루 종일 화살과 기병대의 공격을 번갈아 퍼붓고도 .. 2024. 6. 16.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