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238 [포르투갈] 포르투갈 쇠락하다: 향료 무역의 실체 두 개의 나라, 하나의 왕국 1500년대 말 포르투갈은 해외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일하지 않는 중산층을 양산했다. 반면 농민들의 삶은 고달팠다. 교회 지주와 귀족 지주들은 도시에서의 과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농민들을 더욱 핍박했다. 귀족들은 막대한 재산을 쌓았으나 발전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편안하게 즐길 생각만 했다. 당시 포르투갈을 방문한 한 외국인 전도사는 "이곳 사람들은 어떤 고통과 굴욕을 참아낼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절대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육체노동이란 흑인과 무어인의 몫이며 배경만 있으면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하지 않는 중산층은 국가와 다른 계층의 피를 빨아먹으며 점점 더 거대해졌다. 결국 그들은 포르투갈 경제의 몰락을 가져온다... 2024. 5. 31. [포르투갈&스페인] 아메리카와 돈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 이야기 풍요로운 땅 아메리카 아메리카로 영토를 확장한 이베리아반도의 세력은 두 개였다. 하나는 남아메리카 브라질을 통치한 포르투갈, 그리고 남쪽으로 아메리카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에서 북쪽으로는 오늘날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더글러스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점령한 스페인이다. 아메리카 정복 활동의 1단계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의해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반에 완성되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이 기간 내내 특별히 이들을 주시했고, 그중에서도 스페인의 종교박해와 봉건적 식민 통치는 시선을 끌었다. 이 시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누린 풍요로움은 대부분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인디언이란 이름은 인도에서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것은 콜럼버스가 자신이 인도에서 멀지 않은 일본 혹은 중국 근처에 .. 2024. 5. 30. [스페인] 내부로는 이슬람, 외부로는 필리핀을 점령하다 '그라나다 사건' 이슬람 무어인, 반란을 일으키다. 1492년 그라나다가 수복된 후 가톨릭에 귀의한 이슬람교도들을 모리스 코스라고 불렀다. 특히 발렌시아가 지역에 거주하는 모리스 코스들은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했고 발렌시아의 영토와 경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라나다에서는 지금도 곳곳에 이슬람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지배 세력인 가톨릭교도들은 이미 개종한 이슬람교도들에게도 매우 잔혹하게 굴었다. 마음대로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권력을 이용해 부녀자들을 희롱했다. 천주교 신부들까지도 이러한 악행을 일삼았는데, 한마을에서는 주민 전체가 그 지역 교구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주민들은 진상 조사위원들에게 "그놈을 이 지역에서 쫓아내 버려요!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가 희롱한 여자들을 모두 아내로 맞아야 합니다... 2024. 5. 28. [스페인] 펠리페 2세와 종교재판소의 마녀 사냥 펠리페 2세의 정치 1560년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수도를 툴레토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했다.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약 30마일 떨어진 깊은 산속에 엘에스코리알 궁전을 건설했다. 이것은 그가 생캉탱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수도원 같은 궁전은 펠리페 2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회색빛 화강암으로 기초를 다진 엘 에스코리알은 성벽, 궁전, 교회의 기능을 모두 갖춘 복합 건축물이다. 교회 내부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외부는 엄숙하면서도 소박하고 보수적이다. 이것은 펠리페 2세의 음울한 성격과 중앙집권적 전제정치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펠리페 2세는 이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제국을 다스렸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펠리페 2세는 대단한 일벌레였다. 그는 국왕으로서 매우 검소하고 시.. 2024. 5. 27.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