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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233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엔리케 왕자, 대양으로 눈을 돌리다 엔리케 왕자의 포르투갈 해양 탐험 12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유럽 변방의 작은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의 단일민족국가였다. 당시 유럽 국가에는 '민족의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했지만 유독 포르투갈은 강한 민족의식을 보여줬다. 14세기말 국경 분쟁에서 포르투갈은 예상과 달리 강대국 스페인을 격파했고, 이후 양국은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당시 포르투갈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물리친 주인공은 포르투갈 국왕인 주앙 1세였다. 훗날 그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의 누이와 결혼해 5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이 중 4명이 역사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특히 첫째 아들 두아르테는 포르투갈 왕위를 물려받았고, 셋째 아들 엔리케는 포르투갈 해양 패권 사업의 기초를 다져 항해 대발견의 시조가 되었다. 1415.. 2024. 5. 6.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포르투갈, 틀에 갇힌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유럽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이슬람 문명과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덕분에 이들은 유럽 외에도 아프리카 북부 및 아시아에 이르는 무역 항로에 대한 정보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포르투갈이 항해 대발견에 나서게 된 주요 요인이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비유럽 문명, 특히 아라비아의 과학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아라비아 과학은 특히 천문학과 수리학에서 유럽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접촉과 교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유럽을 벗어나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지.. 2024. 5. 5.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왕자이자 그리스 기사단장이었던 엔리케 포르투갈이 최초의 해양 탐험 국가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일 처음 항해를 국가 차원에서 계획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켰다. 따라서 포르투갈의 항해 대발견은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의 200여 년 항해 노하우는 철저한 계획과 체계 아래 조직적으로 재정비되어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포르투갈의 아프리카(세우타) 점령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1415년 세우타 점령을 포르투갈 해외 영토 확장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북서 아프리카의 도시 세우타는 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가 이끄는 군대에 함락당했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점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슬람으로부터 세우타를 빼앗아 주앙 1세의 위엄을 드높이고 더.. 2024. 5. 4.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시대 이전 상황 강대국 식민지 분할의 선례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두 국가가 무력 충돌이 아닌 공동 협력으로 세계를 분할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 조약을 통해 세계를 양분하고 각자의 영토 확장에 주력했는데, 이 조약은 두 나라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물론 양국의 군사 배치까지 명시하는 등 매우 상세한 부분까지 규정했다. 특히 이 조약은 강대국의 식민지 분할에 대한 선례가 되었고, 이러한 세계 분할은 훗날 베를린 조약에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베를린 조약은 유럽 열강이 한 자리에 모여 기존의 식민지는 물론, 미개척 영토까지 서로 나누어 가진 사건으로, 이때 오늘날 세계 지도의 초기 형태가 갖추어졌다. 서구 열강의 영토 확장은 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 2024.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