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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240

[영국]#44_유럽 열강의 각축전 유럽 열강의 각축전 1500년 이후 강대국 간의 경쟁에서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한 세기마다 영국의 경쟁상대가 바뀌었고, 상대국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영국은 더욱 강대해졌다는 점이다. 16세기에 영국의 적수는 스페인이었다. 영국인은 이 노련한 식민지 강국을 침몰시키고 새로운 해양 강국으로 떠올랐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를 누르고 세계 최강의 해양 강국으로 등극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접전을 벌인 결과, 승리를 얻게 된다. 1688년의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바다의 마부'로 불리던 네덜란드를 꺾고 신흥 해상 패권국이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유럽 대륙의 패권국가인 프랑스와의 결전을 피할 수 없었다.. 2024. 8. 11.
[영국]#43_대영제국으로 가는 과정 영국의 식민 통치 방식 18세기 영국의 식민 통치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처럼 강압적이진 않았다.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식민지에서 대부분 선거를 통해 식민지 정부를 구성했다. 따라서 런던 정부의 간섭은 제한적이었다. 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앙집권적 관리방식을 통해 식민지를 지배했다. 18세기뿐 아니라 19, 20세기에 걸쳐 영국이 거대한 식민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영국 정부가 식민지 정부에 좀 더 많은 책임과 권리를 부여해 불만을 조금이나마 더 줄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영국의 영향력 확대 및 제국의 성장 7년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캐나다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북아메리카도 영국인의 수중에 들어갔다. 아프리카에서도 영국과 영토분쟁을 하던 프랑.. 2024. 8. 10.
[영국]#42_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합병하다, 유니언 잭의 등장 영국의 자유사상을 발전시킨 요소 자유사상 발전과 관련하여 우선 영국이 섬나라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부의 침략이나 공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점은 영국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였다. 또한 영국은 일찍부터 의회제도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개방적인 토론과 논쟁, 그리고 언론 활동이 활발하였다. 일상생활에서도 영국인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으로도 신교는 구교인 가톨릭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다. 가톨릭은 근본적으로 전제적인 종교였다. 로마 교황과 추기경들의 결정이 신도들에게 전해지고, 신도들은 성서의 해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실제로 90퍼센트의 사람들은 라틴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라틴어로 .. 2024. 8. 9.
[영국]#41_영국의 입헌군주제와 존 로크 사상 강력한 군주와 전제 군주 유럽과 영국 사회가 중세에서 현대로 넘어갈 때, 강력한 군주제도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강력한 군주는 이들 국가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으며, 국왕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는 '애국주의'의 표상이었다. 16, 17세기에 군주들은 각 민족국가의 부흥을 이끌었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이 전제정치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전제적인 군주는 신민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에 부딪혔을 때도 결코 이를 수용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입헌군주제의 형성 1688년 이후, 영국에서는 입헌군주제가 정착하게 된다.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국왕은 정책을 결정할 때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했으며,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도 의회의 비준을 얻어야 했다.. 2024.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