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52 [러시아사]#50_소련의 신경제 정책과 미국인 '아먼드 해머' 신경제 정책의 의의 레닌은 신경제 정책을 통해 러시아의 산업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소비에트 정부는 사유 재산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공장으로 돌아가 10~15년 안에 공장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끔 해주시오." 하지만 자신들의 공장으로 돌아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대기업은 정부가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신경제 정책으로 무역은 활기를 되찾았다. 신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개인이 운영하는 기업은 무역업의 50퍼센트를 차지했다. 하지만 공업 분야에서는 개인 기업의 비중이 고작 18퍼센트에 그쳤다. 레닌은 자본이나 은행을 착취의 산물이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의 차용 기업은 허락했다. 미국인 기업가인 해머가 이에 적극 동참했지만, .. 2024. 3. 3. [러시아사]#49_신경제 정책 이후 미국과 소련의 무역 신경제 정책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사회주의와 시장 경제를 직접 연결함으로써 농민의 적극성을 끌어내 그들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농민을 사회주의 경제와 결합할 수 있도록 상업을 발전해야만 했다. 상업 분야에 있어 신경제 정책이 가장 먼저 시행했던 것은 공산품을 농산물과 맞바꾸는 물물 교환이었다. 하지만 화폐를 통해 거래하는 방식에 익숙했던 러시아의 아낙들은 물물 교환을 하지 않으려 했다. 게다가 공산품이 도달하는 시간은 항상 늦었다. 그러자 레닌은 국내의 자유 무역과 은행 시스템을 회복하고 국영 백화점을 설립할 것을 선포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오늘날 러시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쇼핑 명소가 된 이 국영 백화점은 1921년 영업을 시작했다. 러.. 2024. 3. 3. [러시아사]#48_크론시타트 반란과 신경제 정책 1920년, 볼셰비키 정권이 백군을 물리침으로써 러시아의 내전은 종결됐다. 전쟁이 끝나자 러시아인들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화롭던 일상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견디기 힘든 시련인 것처럼 전쟁에서 다시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전쟁이 일어나던 순간부터 모든 것은 전쟁 위주로 돌아갔고 승리 후에는 다음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이렇게 굳어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발전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크론시타트 반란 크론시타트 반란 내전이 끝난 뒤 1921년 3월 크론시타트 해군 기지에서 해병들이 일으킨 반정부 반란 사건이다. 발.. 2024. 3. 2. [러시아사]#47_전시 공산주의와 러시아 내전(적백내전)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 처칠은 영국의 육군 장관에 재임할 당시 볼셰비키를 요람에서 죽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한 경제학자인 케인스는 러시아의 터진 곳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무력뿐이라고 주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승전국인 소비에트 연방은 승자의 대우를 받기는커녕 새로운 전쟁에 휘말려야 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러시아를 공격해 왔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의 국가는 러시아에 무장간섭을 시작했고, 콜차크, 데니킨, 유데니치를 중심으로 하는 백군(반 볼셰비키군)은 신정권을 공격해 왔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전역은 불길과 연기로 뒤덮였으며, 적군이 많을 때는 동시에 24곳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 비해 러시아의.. 2024. 3. 2. 이전 1 ··· 32 33 34 35 36 37 38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