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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45_10월 혁명과 레닌,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다 레닌의 혁명 준비,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를 설득하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데도 중앙위원회가 여전히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9월 29일, 레닌은 다시 한번 중앙위원회에 제안하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혁명에 찬성하지 않으면 자신이 중앙위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레닌이 여태껏 한 번도 이러한 강경한 입장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레닌의 사직 의향을 담은 편지는 꽤 강력한 파급력을 보였다. 훗날 부하린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레닌의 편지가 너무나도 강경했던 나머지 우리는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누구도 그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의회의 해산을 명령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혁명의 성공을 의심했다. 이 때문.. 2024. 2. 29.
[러시아사]#44_러시아혁명 이전, 점점 커져가는 볼셰비키 세력 레닌의 혜안 사실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레닌을 지지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스탈린과 카메네프가 창간한 '프라우다'(진리라는 뜻의 공산당 기관지)에서도 임시 정부에 대한 태도는 모호했다. 어쩌면 이처럼 역사가 베일을 벗기 전에 그 모습을 파악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역사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점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닥치면 그저 조급한 마음으로 역사의 결정을 기다린다. 또한 한편으로는 남다른 안목을 가진 이를 비웃으면서 자신은 결코 역사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는 레닌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1917년 7월, 임시 정부는 '동맹국에 대한 의무 이행'을 내걸고 러시아군의 출전을 명령했다. .. 2024. 2. 26.
[러시아사]#43_임시 정부와 소비에트의 정권 겨루기 임시 정부에 대한 치솟는 불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에는 유명한 배 한 척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와 함께한 이 순양함의 이름은 '오로라'였다. 이 배의 대포는 1917년부터 줄곧 겨울궁전을 조준하고 있다. 1917년 11월 7일, 순양함 오로라가 내뱉은 굉음과 함께 러시아의 역사는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됐다. 하지만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1917년 2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4년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인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들과 군인들에 의해 발발한 2월혁명으로 인해 300년이나 러시아를 통치했던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한 이후 러시아에는 두 개의 정부가 출현해 혼란을 빚고 있었다. 하나는 자산 계급이 세운 임시 정부였고, 다.. 2024. 2. 25.
[러시아사]#42_레닌, 러시아 역사에 등장하다 레닌의 탄생 레닌이라는 이름은 시베리아의 큰 강인 레나강에서 따온 것이었다. 17세에 혁명에 가담했던 이 청년은 27세에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레닌으로 바꾸었다. 19세기의 데카브리스트 이래로 레나강은 차르 통치에 반대하고 러시아 민족의 흥성을 위한 길을 모색하다가 이곳으로 추방당한 혁명가들을 넓은 가슴으로 품어왔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도 혁명가들은 러시아의 노선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들은 도도하게 흐르는 이 강가에 서서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날을 보냈다. 이 때문에 레나강은 러시아 혁명가들의 마음속에 독특한 의미로 자리 잡았다. 레나강은 조국의 번영에 대한 민족의 염원과 갈망을 상징했다. 이러한 이유로 레닌은 레나강에서 이름을 따 자신의 이름으로 .. 2024.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