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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45_유럽내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견제하다 젠킨스 귀 전쟁 때로 전쟁은 상상을 뛰어넘는 해괴한 이유나 사소한 일에서 촉발되기도 한다. 강대국 간의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때마침 발생했다. 1738년 의회가 개회 중일 때, 로버트 젠킨스라는 영국 선장이 하원을 찾아왔다. 그는 잘린 귀가 담긴 병을 꺼내 보이며 1731년에 스페인 경비대에 나포되었을 때 귀를 잘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의회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를 실현해 줄 것을 청원했다. 젠킨스 선장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젠킨스의 출현은 영국 의회의 반스페인 정서에 불을 지폈다. 정권을 잡고 있던 휘그당 당수 로버트 월폴은 여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영국 군함을 지중해로 파견했다. 영국.. 2024. 8. 12.
[영국]#44_유럽 열강의 각축전 유럽 열강의 각축전 1500년 이후 강대국 간의 경쟁에서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한 세기마다 영국의 경쟁상대가 바뀌었고, 상대국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영국은 더욱 강대해졌다는 점이다. 16세기에 영국의 적수는 스페인이었다. 영국인은 이 노련한 식민지 강국을 침몰시키고 새로운 해양 강국으로 떠올랐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를 누르고 세계 최강의 해양 강국으로 등극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접전을 벌인 결과, 승리를 얻게 된다. 1688년의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바다의 마부'로 불리던 네덜란드를 꺾고 신흥 해상 패권국이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유럽 대륙의 패권국가인 프랑스와의 결전을 피할 수 없었다.. 2024. 8. 11.
[영국]#43_대영제국으로 가는 과정 영국의 식민 통치 방식 18세기 영국의 식민 통치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처럼 강압적이진 않았다.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식민지에서 대부분 선거를 통해 식민지 정부를 구성했다. 따라서 런던 정부의 간섭은 제한적이었다. 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앙집권적 관리방식을 통해 식민지를 지배했다. 18세기뿐 아니라 19, 20세기에 걸쳐 영국이 거대한 식민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영국 정부가 식민지 정부에 좀 더 많은 책임과 권리를 부여해 불만을 조금이나마 더 줄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영국의 영향력 확대 및 제국의 성장 7년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캐나다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북아메리카도 영국인의 수중에 들어갔다. 아프리카에서도 영국과 영토분쟁을 하던 프랑.. 2024. 8. 10.
[영국]#42_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합병하다, 유니언 잭의 등장 영국의 자유사상을 발전시킨 요소 자유사상 발전과 관련하여 우선 영국이 섬나라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부의 침략이나 공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점은 영국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였다. 또한 영국은 일찍부터 의회제도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개방적인 토론과 논쟁, 그리고 언론 활동이 활발하였다. 일상생활에서도 영국인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으로도 신교는 구교인 가톨릭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다. 가톨릭은 근본적으로 전제적인 종교였다. 로마 교황과 추기경들의 결정이 신도들에게 전해지고, 신도들은 성서의 해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실제로 90퍼센트의 사람들은 라틴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라틴어로 .. 2024.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