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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21_예카테리나 개혁과 그 한계점 예카테리나 2세는 당시 러시아 사람들에게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 미녀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고대 오리엔트의 전설적인 여제 '세미라미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예카테리나는 참정원, 총감, 성장들을 통해 러시아 제국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녀의 독재 정권은 나날이 강해져 갔고 관료제 역시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전보다 확실히 발전해 갔다. 이렇게 예카테리나는 홀몸으로 타국에 와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했다면 예카테리나는 오늘날만큼의 명성과 존경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러시아 전체를 장악하고 싶었던 그녀였기에 이제는 러시아의 귀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763년, 그녀로.. 2023. 12. 4.
[러시아사]#20_예카테리나 2세의 경제, 정치개혁 예카테리나 2세는 쿠데타에 성공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러시아의 파탄 난 경제와 고여버린 공무원들. 그녀가 칼을 뽑았다. 첫 과제는 경제 해결이고, 그다음은 바로 관료 정비였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예카테리나 2세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은 참담하였는데, 외국에 주둔하던 주력 부대는 무려 8개월이나 월급을 받지 못해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있었으며, 해군 함대는 사실상 급료를 포기한 상태였다. 당시 국가 재정은 1,700만 루블 정도가 적자였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국고의 수입원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국내의 법 기강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각종 부패 행위가 횡행해 돈만 있으면 법도 쉽게 주무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극악무도한 대역죄이든 .. 2023. 12. 3.
[러시아사]#19_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의 쿠데타 옐리자베타가 사망하고 러시아의 국왕 자리에 즉위한 표트르 3세는 자신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예카테리나는 그런 표트르 3세를 보며 걱정하기보다는 기다리고 있었다. 표트르 3세를 대신해 그의 자리를 차지한 본인의 모습을 러시아에 뜻이 없던 표트르 3세는 그저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국정을 처리해 버리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연일 승리하고 있던 러시아 군대에 갑자기 철수 명령을 내리고는 프로이센의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와 평화 협정을 맺어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유럽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평화 협정을 맺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본인이 프리드리히 2세의 열렬한 추종자이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부대를 이끌고 나가 프리드리히 2세의.. 2023. 12. 2.
[러시아사]#18_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의 등장 1762년, 또 한 명의 여제가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대관식을 올렸다. 이로써 표트르의 개혁은 마침내 충실한 계승자를 만나 계속 이어질 수 있었으며, 러시아 역시 다시금 발전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여제가 바로 이번 편부터 다룰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재위 1762~1796)이다. 독일인이었던 그녀는 표트르에 이어 러시아 역사상 두 번째로 대제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 인물이다. 남편의 시신을 밟고 황제 자리에 오른 그녀는 표트르 대제의 진정한 후계자로 등극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러시아로 온 그녀는 63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를 러시아의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1744년, 14살의 한 프로이센 소녀가 고작 옷 몇 벌만 가진 채 러시아 궁정에 나타났다. 그 소녀의 이름은 소피아 아우구스타로, 프.. 2023.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