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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6_막부의 대외 개방,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이이 나오스케가 암살당한 후, 막부는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적인 천황의 위엄과 숭배 정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막부는 천황과의 대립적인 분위기를 완화하고, 조정과 막부가 공동으로 통치하는 공무 합체를 실시했다. 그런데 정치 무대에 등장해 막부와의 연합을 통해 내우외환을 극복하고, 봉건 통치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던 웅번 다이묘들 가운데 가장 실력이 막강한 세력으로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 지역)과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 지역)이 되었다. 이 두 번의 연합을 '삿초 동맹'이라 한다. 해안이 인접해 있는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막부 말기에 막부가 무력해지는 것을 보고, 각자의 번에서 먼저 개혁을 실시해 군사력과 경제력을 증강했다. 조슈번은 농촌의 관리 계층을 지원해 농업 생산을 장려하는 것과 동시에,.. 2023. 12. 21.
[일본 근현대사]#5_사쿠라다몬 사건 안세이 5개국 조약 체결 후 200년이 넘게 교토에 연금되어 있던 천황과 구게가 갑자기 일본이란 국가의 주인공이 됐다. 그들은 수많은 다이묘와 지사들의 옹호를 받으며, 조약 체결에 발언권을 얻게 되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사쿠라다몬 사건 1860년 3월 24일 오전 8시, 에도 성에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을 때였다. 막부의 다이로(특수 시기에 설치된 막부 최고 관직, 로주보다 서열이 높다) 이이 나오스케가 60명의 호위병에게 둘러싸여 에도의 사쿠라다몬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일행이 사쿠라다몬에 도착하자, 갑자기 북소리가 울리더니 길 양쪽에 18명의 자객이 나타나 이이 나오스케가 탄 가마를 덮쳤다. 호위병들은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자객들은 호위병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2023. 12. 21.
[일본 근현대사]#4_근대화의 태동, 요시다 쇼인과 가나가와 조약 18세기말부터 서양의 군함이 빈번하게 일본 근해에 출몰하는데, 일본의 문을 두드린 횟수는 무려 52차례에 달했다. 가장 먼저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열강은 러시아였다. 개항 전 여러 에피소드 1777년, 야쿠츠크 상인 레베데프가 이끄는 원정대가 홋카이도 앗케시를 압박하며, 마츠마에번과의 통상을 요구했다. 1792년 러시아 사절 락슈만이 통상을 요구하기 위해 홋카이도 네무로를 찾아왔다. 러시아의 정식 사절이 방문하자, 막부도 어쩔 수 없이 해안 방어책을 세웠다. 나아가 서양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서적을 대량 수집하기도 했다. 그 후 일본의 서구파 인사들은 린가쿠(네덜란드어를 통해 서구의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서구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했던 학풍) 연구에 몰두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미국이 일.. 2023. 12. 19.
[일본 근현대사]#3_일본 전국시대 요약 및 대항해시대와 일본 일본 전국시대 요약 막번 체제에서 나라의 대사는 언제나 막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조정과 다이묘는 발언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황의 세력은 12세기 말부터 약화되기 시작해,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가나가와현 동남쪽 가마쿠라에 가마쿠라 막부를 건립했을 때는 이미 천황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고, 고대 국가의 율령 체제도 와해하여 무가 정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2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 시대가 바로 무가 정치 시대이다. 이 시기에는 막부의 군사 독재가 합법화됐고, 무사들의 권력은 한없이 팽창했지만, 천황과 조정의 구게(조정에 속한 문사 귀족) 권력은 점점 약해졌다. 제3대 막부가 집권하던 시기에는 겐무중흥(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고 국왕 정치를 실현시킨 정변)이 일어난 .. 2023.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