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러시아를 집어삼키다
1812년, 나폴레옹이 5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향해 진격했다. 얼마 후 러시아의 도시는 차례차례 나폴레옹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러시아 전역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외쳤으니, 바로 쿠투조프였다. 병사들은 소박하고 용감한 장군 쿠투조프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다. 군관들은 대단한 지략을 갖춘 그를 신뢰할 만한 지도자라고 여겼으며 종교계에서도 그를 종교를 존중하는 성실한 신도라 평가했다. 귀족들 역시 그가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는 진정한 러시아인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이렇듯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쿠투조프를 러시아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미 퇴역한 쿠투조프는 나폴레옹 침략 소식을 듣자마자 전투복을 갖춰 입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달려갔다. 자신을 부르는 조서는 없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조국을 지키려 했다. 그런 그에게 황제에 대한 섭섭함은 이미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마음을 비운 쿠투조프는 혼자 나폴레옹에 대한 전략을 세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알렉산드르 1세는 여전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67세의 쿠투조프에게 군사 지휘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진격, 보로디노 전투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나폴레옹은 사태가 순탄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쿠투조프는 분명 북방의 여우야." 나폴레옹의 말이 곧 쿠투조프의 귀에도 들어갔다. 쿠투조프는 "난 최선을 다해 그 위대한 장군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걸세!"라고 다짐했다.
쿠투조프는 이번만은 알렉산드르 1세의 명령을 거부하고 전략적인 후퇴와 방어를 고집했다. 천재적인 두 장군 쿠투조프와 나폴레옹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하지만 쿠투조프는 힘을 아껴두기 위해 공격과 후퇴를 반복했다.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모스크바 서쪽 교외의 보로디노에서는 많은 러시아인들이 죽었기 때문에 이곳은 훗날 러시아 군인들의 마음속 성지가 되었다.
말년의 나폴레옹은 당시를 떠올리며 다음처럼 회고했다. "내가 참여했던 수많은 전쟁 중 모스크바 근처에서 벌어진 그 전투가 가장 힘들었다. 분명 승리한 것은 프랑스였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러시아였다." 나폴레옹은 보로디노 전투에서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략에서는 지고 말았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러시아군을 섬멸하지 못한 채 적이 자진해서 후퇴하는 모습을 그저 두 눈 뜨고 지켜만 봐야 했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입성
쿠투조프는 결국 모스크바에서도 후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상징이 되는 도시였기에 이를 포기한다는 건 쉽사리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쿠투조프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후 영원히 군대를 떠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뜻도, 개인의 명예도, 러시아 국민 전체의 염원도 물리친 채 과감히 후퇴를 명령했다. 그는 "내가 지금 모스크바를 포기하는 것은 나폴레옹의 멸망을 보기 위해서다!"라고 장담했다. 당시 그의 명령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예견으로 꼽히기도 한다.
의기양양하게 모스크바로 입성한 나폴레옹에게 남겨진 것은 텅 비어 있는 성이었다. 나폴레옹을 맞은 것은 비굴한 모습의 패자가 아니라 도시 도처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그 후 모스크바 후퇴를 계기로 자발적으로 20만 대군을 조직한 러시아인들 가운데 14만 명은 직접 전투에 참여했으며 나머지는 쿠투조프의 예비 병력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어쩔 수 없이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고 있는 쿠투조프와 곳곳에 퍼져 있는 러시아 민병대를 상대해야 했다. 게다가 쿠투조프 지휘하에 있던 정규군과 민병대의 연합 작전은 프랑스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 나폴레옹은 적진인 러시아에 갇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모스크바가 프랑스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 일은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의 원수 쿠투조프 공작은
그들을 멸망의 길로 밀어 넣었다.
전 세계 모두 다 알리라.
우리가 어떻게 피 맺힌 원수를 갚았는지를.
오늘 모스크바에서의 빚은
그 크기대로 모두 갚아주리라.
1812년 10월 19일, 나폴레옹은 결국 철수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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