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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영국

[영국]#20_영국-스페인 전쟁, 무적함대를 격파하다

by 티제이닷컴 2024.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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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해적 활동과 노예무역 등 새로운 사업에 왕실의 힘을 실어 줌으로써 당시 세계 최고의 식민제국이었던 스페인은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해상 장악력에 있어 영국 해적이 스페인 해군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해상에서의 패권을 두고 갈등이 심화되던 중, 1588년 마침내 양국 간에 일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영국-스페인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1587년에 가톨릭교도인 메리 스튜어트가 잉글랜드에서 처형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메리 여왕의 죽음이 양국 간의 오랜 종교적 갈등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종교적 동기로 잉글랜드 침공을 결정했지만, 실상은 유럽 대륙과 해외 식민지에서 스페인에 거세게 도전해 오는 잉글랜드를 격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함대는 해군 제독인 하워드 경과 부제독으로 임명된 해적 출신의 드레이크 경이 90척의 전함을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공한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맞섰다.

 하늘이 잉글랜드를 지켜주려는 징조였는지, 때마침 강력한 서풍이 불어닥쳐 영국해협에 출몰한 스페인 함대를 줄곧 괴롭혔다. 며칠간의 격전 끝에 드레이크 경이 눈부시게 활약한 영국 왕실의 함대는 단 한 척도 파괴되지 않은 채로 130척의 전함과 8,000명의 선원, 2만 명의 병사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를 격파시켰다. 지난 1세기 동안 무적함대는 스페인의 제해권을 보장해 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 함대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전투력의 절반가량을 잃고 말았다.

 1588년 9월, 엘리자베스 여왕의 함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순간 역사는 뒤바뀌었다. 이 놀랄 만큼 완벽한 승리를 통해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 해양 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해전의 승리로 얻은 자신감과 세계를 보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마침내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영국은 국가 발전에 거대한 일보를 내딛게 되었다.

영국 함대와 스페인 무적함대의 교전
영국 함대와 스페인 무적함대의 교전


영국의 식민무역

 비록 스페인이 잉글랜드와의 첫 대결에서 참패당하기는 했지만, 아직 해양 강국으로서의 패권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1589년,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궤멸하기 위해 출동한 잉글랜드의 대규모 함대를 패퇴시켰다. 이러한 공방전은 1604년까지 이어졌고, 잉글랜드와 스페인은 서로를 견제하며 전력을 정비했다. 해상에서든 육상에서든 아직 잉글랜드는 완전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 최강국이 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더 남아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런던은 면적이 두 배로 확대되고 인구가 20만 명(1600년)을 넘어서면서 명실상부한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강 북쪽 연안에는 화려한 도시 건축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섰고, 남쪽 연안에는 각종 극장이 생겨났다. 이렇게 런던은 영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도시가 되었다.

 영국의 해외 식민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584년, 영국의 항해가 월터 롤리가 북아메리카에 처음으로 영국의 식민지를 개척했다. 이곳은 영국이 자랑하고 존경하는 '처녀 여왕'을 기리는 뜻으로 '버지니아'라고 명명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적들도 그녀의 지략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한 전기 작가는 여왕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이 매서운 늙은 닭이 꼼짝도 하지 않고, 영국 국민들을 품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여왕의 날개 아래에서 부화할 힘을 키우고 빠르게 성장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지혜로 영국은 내적 통일을 이루는 한편, 밖으로는 힘찬 도약기를 맞이했다. 세계 무대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며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을 예고했다.


화려한 발전의 이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혜와 관용은 영국이 현대 정치 문명을 성장시키는 데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으며, 영국 사회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 화려한 비상의 이면에는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잉태되고 있었다.

 그 첫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전제왕권을 강화함으로써 몇 세기 동안 지켜져 오던 '마그나 카르타'가 효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해상무역과 국내경제의 발전으로 힘을 얻게 된 신흥 상인 세력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왕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과 의회, 그리고 왕권의 권력 다툼은 영국의 발전에 중요한 관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제임스 1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다

 1603년 3월 24일, 엘리자베스 여왕은 눈을 감으면서 잉글랜드의 왕위를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인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6세에게 물려주었다. 그가 제임스 1세(1566-1625)로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면서 튜더 왕조시대가 마감하고 스튜어트 왕조시대가 열렸다.

 동시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각각 독립된 체제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한 사람의 군주가 다스리게 되었다. 그 당시 영국은 스페인과의 패권 다툼과 아일랜드와의 갈등으로 힘든 시기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산적한 문제들을 후계자에게 남긴 채 깊은 침묵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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